동향과 이슈

점심시간

샘연구소 2011. 3. 26. 16:52

"너 그렇게 지각하면서 그래도 결석은 안 하네... 대단하다... 수업시간에 절반도 못 알아듣는다며 무슨 재미로 학교 오니?"

- 1위: "밥 먹으러요. ㅎㅎ'

- 2위: "친구 만나러요. ㅎㅎ"

-3위: "심심하기도 하고... ㅎㅎ"

-가끔: "똥싸러요... -_-;;"

 

학교생활 하루 중 점심시간이 없다면 어떨까? 물론 굶고 공부만 할 수도 없지만 그 의미나 중요성(!)으로 보아 점심시간이 없는 학교라면 가지 않을 것 같다. 더구나 학업을 따라가기 힘들거나 특별히 학교생활에 재미있을 일이 없는 아이들에게 점심시간은 특별하다.

 

얼마 전 옛 사진들을 들추다가 우연히 교사 초년병시절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 사진을 발견했다.

 

 

 

교사시절, 되도록이면 아침자습시간, 점심시간, 청소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하려고 애썼다. 심지어 쉬는 시간에도 교실에 가서 아이들과 수다를 떨기도 했다. 때론 아침자습시간이 '타율적' 자습이 아닌 진짜 '자율적' 자습이 되어야 한다며 교실에 들어가지 않아서 교감선생님에게 지적을 받고 '타습' 아닌 '자습' 교육 중이라고 맞서기도 했다. 다행히, 아니, 당연히, 아이들은 내 뜻을 공감하고 감독하는 담임이 없어도 점잖게 각자 자기 일을 해주었다. 

 

특히 초임 교사 시절엔 점심시간을 가장  소중히 여겼다. 차례로 책상을 옮겨가며 4명과 함께 점심을 먹었는데 그러면서 아이들 점심시간 중 정숙지도도 되지만 아이들과 사귈 수도 있고 도시락을 보고 가정형편도 단번에 알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개 아이들의 도시락 반찬은 참으로 단순했다. 나는 아이들과 도시락을 펼쳐놓고 이 반찬 저 반찬을 함게 나누어 먹었다.  이후 교직원 식당이 생긴 뒤에는 4교시나 5교시에 식사를 하고 점심시간에는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했다.

 

A4 한 장 만한 양은 도시락에 밥을 꾹꾹 눌러서 가득 담아오는데 반찬은 거의 똑같아서 늘 조기 구운 것을 쿠킹호일에 싸오는 아이가 있었다. 가정방문을 해보니 아버지가 작은 트럭에 조기를 싣고 다니며 파시는 분이었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웠지만 가족의 구성, 기능, 관계 모든 면에서 위기를 겪고 있던 학생이었다. 그를 포함해 몇몇 학생들은 방과후에도 나와 함께 여러가지 일을 하고 주말에 내 아이들과 함께 놀기도 했다. 야간공고에 진학해서는 훌륭한 리더가 되었고 지금은 직장에 안착하고 마침내 천사같은 아내를 얻어 멋진 가장으로 성장했다.

 

그 시절 가르쳤던 어느 제자와 만났을 때 그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미안하다면서 "너는 나를 어떻게 기억하니?"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선생님은 언제나 밥보다 반찬도시락이 더 컸어요." 자기들과 같이 나눠먹으려고 그랬던 선생님의 마음을 지금은 더욱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랬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아이들이 제 차례가 되기를 긴장 또는 기대했던 것,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과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던 점심시간이 내게도 참 소중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요즘 학교식당에서 분주하고 시끄럽게 자기들끼리 밥을 먹는 아이들에게는 이런 교육적 경험이 불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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