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재래시장을 찾기 힘들다.
동네에 있다는 건 알아도 막상 잘 가게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차가 있으면 대형마트를 이용하고 혼자 사는 사람들은 편의점을 많이 이용한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대형마트는 왠지 싼 척만 하는 것 같고 맛도 덜 한 것 같고
편의점엔 없는 것이 많아서 여기도 저기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끔 소소한 과일 야채를 파는 구멍가게를 이용하거나
휴일에 큰 맘 먹고 운동화 신고 재래시장을 방문한다.
그럴 땐 언제나 기대 이상으로 행복해진다.
우리 동네에도 집에서 20분 정도만 걸어가면 재래시장이 있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걸어가면 내놓은 물건들만 보아도 즐겁고 신난다.
굳이 무얼 사려고 시장에 간 게 아니라 일 때문에 지나치게 될 때에도 시장을 지날 때는 자꾸 찬거리가 사고 싶어진다.
며칠 전에는 시장에 가서 이것저것을 사다보니 무거워져서 마을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재래시장의 좋은 점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야외에서 쇼핑하니 좋다. 건강에 좋다.
물론 비올 때는 예외겠지? 그래도 시간 감각이 살아있고 햇살을 쪼이면서 다니는 게 좋다.
시장갈 때는 빈 시장바구니만 주머니에 넣고 걸어가니 운동도 된다.
주인과 묻고 대답하고 흥정하니 좋다.
어떤 할머니는 굳이굳이 하나를 더 넣어달라고 5분 넘게 주인아저씨와 실랑이를 한다. 그러다 끝은 거의 비슷하다.
"아이구, 할머니 으악스럽기도 하셔. 옛쑤! 이것 가져가슈!"하면서 드리곤 픽 웃는 것이다.
할머니는 고맙다고 하면서 돌아서서는 "저런, 야박한 주인 같으니라구!"하면서 욕을 하기도 하지만 그게 다 정겹다.
간혹 옆에서 거드는 이가 나타나기도 한다. "에이, 그러지말고 하나 드려요~" 또는 "할머니, 그만하면 됐어요. 저보다 훨씬 많이 드렸잖아요. 많이 드시지도 않으시면서..."
그 할머니는 다음에도 또 그 집에 갈 것이다. 사람사는 맛이 난다.
물론 실컷 생선 찔러보고 야채 들었다 놨다 하다가 안 사고 돌아갈 때 기분나쁜 말을 던지는 주인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하면 '사회성기술'도 증진되겠는 걸! ^^
셋째는 '주체적'인 '지적(知的) 행위'를 하는 즐거움이 있다.
같은 물건 파는 집에 여러개면 둘러보면서 살지 말지 결정할 시간도 벌고, 가격과 물건도 비교하고 사게 된다는 것이다.
계산능력, 비교, 집중, 암기, 판단...
이건 뭐 재래시장 장보기가 아이들 '지능단련'에 좋다고 홍보하면 대박 터지는 거 아닌가?
그리고 시장바구니가 점점 무거워지면 "이제 그만 사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오버하지 않는다. 규모있는 경제행위가 가능해진다.
사실 이날은 양손에 가득 감자, 고구마, 양파를 비롯해서 두 손 가득 장바구니가 무겁도록 여러가지를 샀지만 다 쓴 돈은 3만원이 되지 않았다. 마트에서 사면 카트에 얼마나 담겼나를 보고 짐작은 하지만 대개는 무작정 사서 담고 보게 되니 많이 살 때가 많다.
결국 한 주간에 먹을 만큼 사게 되는 이득이 있으니 냉장고도 일이 줄고 먹거리도 그만큼 신선기간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니 대도시에 피자집, 편의점, 커피전문점, 김밥전문점, 미용실 등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이 포화상태라고 한다.
우리 연구소 주변에도 4층자리 한 건물에 미장원이 3개이기도 하고 200미터 이내에 유명 빵집이 2개, 좁은 사거리를 둘러싸고 편의점이 3개나 있다. 허허...
프랜차이즈 가맹점간 거리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 자세한 기사는 아래 출처 참조.
사진출처: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60709.html
한 번은 일 때문에 수도권의 사업학교에 갔다가 근처 재래시장에 들렀다.
동네 빵집, 조금씩 내놓고 파는 과일가게, 크기는 작지만 실한 야채생선가게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몇 군데를 들렀다.
그리고 주인들을 바라보며 "이분들이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학교의 학부모겠지?" 생각하니
가게주인으로 안 보였다.
아이들 키우느라 돈 벌고, 일 하고, 돌아가서 살림하고, 아이들과 볶대며 사는
그런 아빠, 엄마, 할머니들로 보였다.
조금 불편해도
도시사람들이
아직 남은 동네의 재래시장을 이용해보면 어떨까?
학교 아이들과
재래시장 답사 프로젝트, 재래시장 지도 만들기, 재래시장 사람들 인터뷰 다큐만들기, 재래시장에서 장봐서 점심 만들어 먹기(방학중 프로그램), 내가 재래시장에서 장사를 한다면? 연구발표회 ...
그런 프로그램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좋은 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