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 사랑방

ADHD

샘연구소 2013. 3. 11. 18:28

나는 정신과에 가서 검진을 하면 분명히 ADHD 환자로 나올 것이다.

 

아마 중 3 때쯤 부터인 것 같다.

내가 수업 시간에 조는 버릇이 생겼다. 지금까지도 좀 지루하고 뻔한 강의나 행사에서는 거의 반드시 존다.

그래서 친구들이 '수업시간마다 조는 경현이가 대학 간 것'이 '세계3대 불가사의'감이라고 했다. 먹는 데, 노는 데, 자는 데 3가지 귀신이 씌였다고도 했다. 지루함, 흥미없음을 견디는 방법이 조는 것이었던 나.

 

지금 생각하니 사춘기를 겪으면서 나에게 흥미를 잃으면 집중하기 힘들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일종의 '부산스러움증'이 생긴 것 같다.

수업이 얼마나 지루한지. 그래서 수업중 내 안의 '가만히 있지 못함 또는 부산스러움'을 참기위한 대책이 조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내가 조는 걸 모르셨는지 아님 봐주셨는지 나는 열심히 졸았다. 물론 어떤 선생님은 분필쪼가리를 던져서 이마에 맞혀가며 내 조는 꼴을 안 봐주셨다.

지금 생각하니 아무리 귀신처럼 '안 조는 척' 한다고 해도 앞에 선 선생은 다 보이는데... ㅎㅎ

봐주신 선생님들께 감사...

 

고등학교 다니면서는 이런 나의 특성을 알아채고 공부스케줄을 짧은 시간대로 나누어서 짰다.

아침에 학교갈 준비하느라 바쁠 때와 쉬는 시간 짧은 시간에는 수학 문제풀이(하나만 풀어도 되니까)

저녁이나 주말에 자리잡고 공부할 때는 사회, 그것도 20분 하고 나가서 물 마시고 다시 20분 하고 줄넘기 한 번 하고...

학교 오가는 전철에서는 영어단어 외우기(약간의 방해소움이 오히려 집중을 돕는다)...

 

공부할 때에도 거의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았다. 그런 곳은 견디기 힘들다.

조용하고 일체의 움직임이 절제된 그런 분위기 속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크게 소리를 치며 마구 뛰어다니고 싶어진다. ... 그래서 도서관에는 안 간다. 책만 빌려서 나온다. 집에 와서 앉아서 보고 좀 쉬고 누워서 보고 좀 먹고 엎드려서 보고 화장실 다녀오고.. 그런 식으로 본다.

책을 읽거나 집안 일을 할 때 라디오로 음악을 틀어놓고 읽는다. 약간의 소음이 있어야 다른 소음을 안 듣게 되고 더 집중이 잘 된다.

책도 동시에 서너권을 꺼내놓고 읽는다.  기분에 따라, 장소에 따라 읽는 게 다르다. 책상에 앉아 밑줄 그으며 읽는 책, 전철에서 들고다니며 읽는 책, 화장실에 잠깐 앉아서 읽는 책, 잠자기 전에 누워서 읽는 책이 다른데 동시에 진행된다. 이거 '스타킹'에 나갈 깜이 되나? ..

 

지금도 나는 부산스럽다.

남들이 보면 되게 에너지가 넘치고 아이디어가 퐁퐁 솟는다고 한다. 다행이다. 그럴 땐 좋은 쪽으로 부산스러움이 발산될 때이다.

매시간 다른 반 아이들을 만나고 다른 이야기와 역동을 마주하게 되는 교사나 학교사회복지사라는 직업도 흥미로웠고

묶인 데 없이 오라는 곳으로 바람따라 돌아다니는 프리랜서 강사라는 지금의 밥벌이도 이런 나에게 적절하다.

하지만 지금도 강의나 컨설팅을 할 때 뻔한 이야기, 격식차리는 재미없는 순서는 정말 고역이다.

 

 

얼마 전 눈수술을 했다. 그러고 한동안 외출을 못했다.

집안에만 있으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집에서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했다.

 

 

요가도 하고, 책도 읽고, 요리도 해먹고, 기타도 치고, 산책도 하고, 안 하던 코바늘 수예까지 해서 작품을 만들었다. 그래도 지루하다.

퀼트의 전문가인 친구에게 부탁해서 작은 손가방을 하나 만들겠노라고 햇다.

그래서 친구와 천을 고르고 본을 뜨고 바느질을 시작했다.

 

 

 

 

그런데...

아뿔싸!

노안 때문에 어디가 천이고 어떤 게 실인지 구분이 안 된다. 게다가 촘촘한 바느질이라니...

속으로 계속 "이런 걸 재봉틀로 안 하고 왜 손으로 한담..." 해가면서 바느질을 했으나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애꿎게 친구에게 일을 더 만들어준 셈이 되었다. 친구는 내가 바느질 한 부분을 다 뜯어내고 새로 바느질을 해서 완성품을 선물로 주었다.

 

다시 집에 돌아오니 심심하다.

안 보던 텔레비전도 보고, 몇 시간 씩이나 컴퓨터로 게임까지 했다.

하지만 그것도 지루하고 짜증난다. 그만 두었다.

심심해지니 우울하다.

 

새학기를 맞아서 ADHD 아이들도 흥분될 것이다.

새로운 것에는 흥미가 생기고 에너지가 발동하니까.

그러나 그것도 잠시, 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오면 그 긴장과 지루함, 귀차니즘과 짜증을 어떻게 견뎌갈지 걱정된다. 우울해질 수 있다.

그 전에 리듬을 갖게 해주는 게 필요하다. 하루 중 시간대를 잘 골라서 적절하게 공부하기, 짧게 공부하고 자주 기분전환 하기, 운동과 음악감상 등으로 스트레스 해소하기, 내면으로부터 동기화하기, 자기를 스스로 칭찬하고 격려하기... 이런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지금껏 잘 견뎌온 나를 칭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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