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과 이슈

진짜 거지근성

샘연구소 2013. 9. 8. 16:59

내가 경제적으로 힘들 때, 마음과 몸이 아프고 불편해서 '보통'사람처럼 행동할 수 없을 때 

이런 저런 분들이 도움을 주셨다.

 

그런데 도음을 받아도 여전히 힘들고 희망이 안 보이니

난 그런 위로의 말과 도움의 손길들이 참 괴롭고 수치스러웠다.

자기가 쓰고 남는 것, 두고 안 쓰는 것을 처분하듯 주면서 생색내는 분도 있었다.

감동적인 말과 표정으로 조금 도움을 주시고 다른 자리에서 나를 매우 불쌍하게 여기는 표현을 하며 자기 선행을 아주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을 알고 나서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런저런 도움들은 당시 내가 극도의 절망과 가난을 벗어나는데 별 도움이 안 되었다.

 

어떤 이는 '힘들지? 이렇게 저렇게 해보지 그래, 가만히 있지 말고. 더한 사람도 참는데 왜 그래?' 또는 '아무개도 그렇더라고. 나도 해봐서 아는데 사는 게 다 그런 거야. 조금만 참아봐...' 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제가 당해봤나? 지금 내 심정 아나? 나랑 자기랑 똑같은가? 그때랑 지금이랑 얼마나 다른데... 나도 해볼만큼 다 해봤다고.. 그 정도도 모를 줄 알아?'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떤 분은 '당신이 너무 똑똑해서 그래. 다른 복이 많으니 이런 역경을 겪는 거야. 하늘은 공평하다잖아....'라고 했다. 가슴에 비수가 꽂혔다.

나와 같은 처지가 아니라면, 나보다 잘 나고, 건강하고, 마음이 여유롭고, 돈이 많은 사람이 주는 도움은 거의 모두 고마움과 함께 수치스러움과 고통을 동반했다.

 

나는 많이 울고 많이 괴로워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기위해 애썼다.

그들의 '선의'를 '내 사악한 마음으로' 비틀어서 받아들이지 않고 그대로 감사히 받고자 수없이 내 마음을 다스리고 진정한 마음으로부터 감사의 인사를 하려고 애썼다.

비록 내 삶의 고난을 바꿔놓지는 못하더라도 세상이, 삶이, 그렇게 서로 돕고 받으며 어울려서 사는 것이라고 '도'를 깨닫고 내면화하고자 애썼다.

내가 자존심만 강한 욕심꾸러기였나보다. 이제야 겨우 좀 된다. 도움을 청하고 받으면서 사는 걸 배웠다. 조금 폼이 구겨져도 찌그러져서 조연 역할을 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래도 아직 불쑥불쑥 혈기가 치고 올라온다. 또 한편으론 내가 오히려 힘든 아이(어른)에게 실수하지 않을까 조심한다.

하물며, 아이들에게 이런 '부처님 가운데 토막되기'를 기대하는 것이 가당한 일일까?

 

교육복지사업을 하면서 잊을만 하면 듣게 되는 말, '거지근성'.

없어도 되요. 안 주셔도 되요. 아니, 차라리 그런 자리에 가지 않거나, 받고 당당하거나, 거절하는 것은

진짜 거지근성이 아니다.

남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것이 내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지만 그저 '주시는 대로' 굽신거리며 감사하며 겸손하게 받는 것.

그게 진짜 거지근성이 아닐까?

진짜 거지근성은

별 희망이 없을지라도 주는 이의 마음에 나를 철저히 동화시켜서 비굴한 모습으로 아무 자존심도 없는 것처럼

오라면 가서 받고, 가라면 가서 기다리며, 인사라하면 감사하다고 절하는 그런 것일 게다.

 

그러니 그런 거지근성은 상대역을 하는 '주는 이', '베푸는 이'가 만드는 것이다.

주는 이, 베푸는 이가 강하고 높고 똑똑하고 힘있고 당당할수록 받는 이는 그런 거지근성을 내면화하게 될 것이다.

 

 

교육복지사업을 하면서

아이들이 참여를 안 하는 것, 공짜 프로그램에 초대받고도 그리 감격하거나 고마워하지 않는 것은

거지근성이 아니다.

 

만약 아이들에게서 '거지근성'을 보고 속상했다면

잠시 모든 걸 멈추고 나를 돌아보아야 한다.

나(또는 '베푼 어른')의 대접받고자 하고 생색내고싶은

"거지반대근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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