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

M. 스캇펙 읽기

샘연구소 2014. 4. 25. 13:03

나는 확고한 체계이론의 신봉자가 되었다. 이 이론의 기본 생각은 모든 것은 다 하나의 체계라는 것이다.

하나의 세포, 기관, 기관계 또는 개인이라는 차원을 넘어 거시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우리 모두는 인간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한 부분이다. 그 사회는 다시 바다, 육지, 산림 그리고 대기 등과 연계되어 있으며 이 모든 전체가 '생태계'를 이룬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제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236)

 

 

체계 이론가들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어떤 체계의 일부라는 사실을 넘어 그 체계의 한 구성요소를 변화시키면, 다른 모든 구성요소들 역시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사회 속에서도 이런 사실이 나타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이론 인해 우리를 발전시키거나 파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37)

 

-- 학교사회복지를 알고나서 나는 처음에 아이들을 환경체계-가족, 학교, 지역사회 등-의 '영향을 받는' 존재로만 인식했다.

    그러나 그들이 변하면 가족도, 친구와 교사도 마을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또한 아주 작은 변화가 먼 곳의 작거나 큰 변화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배웠다.

 

 

세속적 인도주의의 문제는 바로 왜 인간이 소중한 존재인지 그리고 왜 그에 합당하게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밝히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흔히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만 어떠한 신학 이론에도 뿌리를 두고 있지 않는 세속적 인도주의에 의존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예절 바른 행동을 단순히 '윤리적'이라고 정의 내리지 않고, 보다 구체적으로 '보다 높은 차원의 힘에 복종하는 윤리'라고 정의한다. 앞서 말했듯이 빛과 진리 그리고 사랑이 하느님을 뜻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우리가 진정으로 이런 것들에 복종을 한다면, 우리의 행동은 비록 스스로 종교적이라 생각하지 않더라도 신성할 것이다.

(242)

 

-- 마흔에 사회복지를 공부하기로 하면서 인권, 인간존엄성, 사회정의... 와 같은 사회복지의 가치는 어디에서나오는가 질문했다.

    대학원에서는 배우지 못했지만 나 스스로 생각했다. 그것은 학문이 아닌 더 높은 곳, 신성함, 영성에의 복종에서 올 수밖에 없다고.

   누가 나에게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삽니까?라고 물으면 나는 엉터리 '기독교인'이지만 예수를 만나버린 나의 신앙고백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스캇펙을 읽으며 내 생각과 같음에 안도한다.

 

 

나는 톰의 치료에 도움이 되는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말들은 내가 했던 그 무엇이 아니라, 내 존재 자체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그 무엇일 것이다.

(271)

 

사실 최고의 정신과 의사들은, 그들이 치료 과정에서 충분히 어려움을 견뎌 내고 난 뒤에는, 결국 환자를 치료하려는 노력을 잠시 멈추어야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의사들이 지향해야 될 현실적인 목표는 환자와 최선의 관계 또는 공동체 구성원의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런 관계 안에서는 의사가 꼭 '무엇인가'를 하지 않아도 치료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나는 치료의 힘, 즉 영적인 힘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온다고 믿는다. 그것은 선물과 같은 것이다. 그런 선물은 다른 사람에게 그저 나누어주어야 하는 용도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곧 신(주는 자)의 의도라고 나는 믿는다. 다시 말해 어떤 힘이든 - 영적이든 일시적이든- 그것을 가지는 중요한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73)

 

-- 역기능적인 개인이나 조직을 변화시키려고 할 때 자칫 내가 무언가를 완전히 바꾸려는 의지나 믿음은 얼마나 오만한가.

    나도 그와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나는 그와 분리되어 천상에 머무는 유능한 치료자가 아니라 그와 연결되어 있는 무력하고 초라한 이웃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당신이 문제를 해결하는 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 문제의 일부이다."

(엘드리지 클리버가 한 말을 인용함) (306)

"불의와 거짓 그리고 탐욕에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 정직, 진실 그리고 연민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만약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여기 모인 수천 명의 사람들처럼 이것을 실행한다면, 세상은 바뀔 것입니다."

(윌리엄 포크너의 연설을 인용함) (307)

 

-- 변화와 책임에 대해 스캇펙은 여러 페이지에 걸쳐 쓰고 있다.

    부족하지만 끊임없이 두려움을 떨쳐내며 정직, 진실, 연민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러려면 혼자보다 여럿이 함께 하는 것이 좋다.

 

 

"혼자서 모든 걸 책임지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건 제 일입니다."

그 쪽지 밑에는 '신'이라고 서명이 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우리 인생에서 - 그리고 넓게는 이 세상에서 -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잠시 동안 '모든 것에서 손을 떼고 신에게 맡기는 것'일 때가 있다. 이 말은 미국 알코올의존증환자협회(AAA)에서 자주 사용하는 문구이다.

...

우리는 모두가 직계가족이나 공동체를 돕기 위해 무엇인가 하도록 결정을 하는 동안에도, 나는 그들이 구체적으로 해야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우리는 모든 일에 관여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선별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신이 우리를 부르는 방법과 다른 사람을 부르는 방법은 다르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310)

 

-- 책임과 소명에 대하여. 각자가 자기 소명대로, 자기 개성대로 하는 것이다. 누구와 비교할 필요가 없다.

    나에게 맞는 방식이 있고 나와 잘 어울리는 내담자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방식이 내것이 안 될 수도 있고 나와 관계를 잘 맺은 학생이나 가족이 다른 사람과는 불편할 수도 있다. 내가 다 잘 하려고 하는 것은 욕심이다. 남을 내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도 그른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각자의 모습과 색깔대로 아름다운 퍼즐을 구성하고 있다.

 

 

참된 부자는 하느님과 지속적인 관계를 갖고 남에게 베풀어 줌으로써 자신들도 많은 것을 받는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영적인 부유함 또는 세속적인 부유함 아니면 이 두가지를 다 가질 수 있는 축복을 받았던지 간에, 이러한 축복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여러 가지 요구가 따른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에게(재능, 돈, 또는 다른 자질이건) 많은 것을 기대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많은 부를 축적한 사람들에게 가장 큰 딜레마는 자신의 재산을 - 어느 정도의 재산을 -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분명한 공식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권력과 마찬가지로 돈을 소유하는 진정한 목적은 다른 사람들과 이것을 공유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318-319)

 

 

-- 축복에는 요구가 따른다는 것을 깨닫기를. 그 요구가 단지 개인이나 가족의 차원을 넘어서 더 넓고 높은 곳으로 나아가기를.

    그래서 달란트는 결국 내가 질 십자가이며 그 십자가가 나의 축복이고 영광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깨닫기를.

 

 

 

 

 

강원도 교육청피씨들과 5년차 이상 교육복지사들이 함께 한 연수에서

마지막에 각자의 마음에 남은 말과 생각, 느낌을 적어

나무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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