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

M. 스캇펙 읽기

샘연구소 2014. 3. 31. 17:11

아직도 가야 할 길

<그리고 저 너머에>

(204-230쪽)

 

훈련은 인생의 여러가지 문제를 푸는 수단이다.

모든 훈련은 복종의 한 형태이다.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 또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것을 구별해 내는 훈련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언제 무엇에 대해 복종하고 또는 복종하지 않을 것인지를 그리고 그 복종의 대상이 우리의 자아인지, 사랑인지, 신인지 아니면 악의 힘인지를 선택해야 되는 실존적 고통을 겪기 때문이다.

(중략)

"우주에 중립지대란 없다. 어떤 곳에서나 어떤 순간에서나 신이 우리의 영혼을 원하거나 또는 사탄이 우리의 영혼을 원하고 있다." 

 

훈련. 'discipline'이란 단어의 번역이겠지? 훈육이라고도 한다.

아동의 발달, 교육에서 훈육은 매우 중요하다. 외면할 수 없다.

극단적 자유주의자라면 훈육이란 말 자체에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르겠으나 일상적으로 훈련, 훈육은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오늘날 이 훈육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다.

복종의 훈련.

선택과 책임.

 

자신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자식을 돌보는 일을 진심으로 즐기는 부모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와는 반대로 하는 일과 삶의 방식이 그들이 받은 소명과 어울리지 않은 사람들을 볼 때는 항상 마음이 불편하다. 그런 삶은 낭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 보는 일을 '소명'으로 여기는 부모라면 스캇펙과 같이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부모라면? 그것이 '해야 할 일'이고 그걸 즐겨야만 하는지?

세상은 하고 싶은 일만을 하고 살기 힘들다. 점점 더 그런 것 같다.

소명... 직업... 과연 소명을 직업을 갖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스캇펙은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 후 그분은 30분 동안이나 내게 여러가지 질문을 했다. 마침내 45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냉정해보이는 이 수학선생님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의자 뒤로 몸을 젖히면서 말했다.

"미안하지만 난 널 도와줄 수 없구나. 네게 해 줄 말이 없어."

그분은 말을 이었다.

"너도 알겠지만, 완전히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본다는 건 정말이지 불가능해. 네 입장이 되었다고 해도 - 내가 그런 상황이 아니어서 다행이다만 -내가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 어떤 조언을 해 주어야 할지 모르겠구나.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

사실은 그가 나의 삶을 구해 주었다. ...(중략)

내가 그분의 사무실을 나설 때, 나는 커다란 짐을 덜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천재 선생님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른다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른다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중략)

 

내가 필요로 했던 도움을 주었던 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틀에 박힌 조언도 하지 않았으며, 내가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말한 바로 그분이었다.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 주었으며, 나의 입장이 되어 보려고 노력했었고, 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 주었던 바로 그분이었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은 바로 그분이었다. 나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주었던 사람도 그분이었다.

 

help 원조라는 것.

human service 라는 것.

겸손해야 하겠다.

솔직하고 겸손할 때, 도움을 '주지'는 못해도 그에게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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