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과 이슈

무당에게 배운다

샘연구소 2011. 4. 10. 09:17

내가 어렸을 적 동네에서는 가끔씩 굿판이 벌어졌다.

화려한 옷을 입은 이가 동동 뛰면서 울긋불긋한 끈이 달린 방울을 흔들면 주변에서 사람들이 손을 부비며 빌었다. 그 소리는 거의 반나절을 계속 되었다. 

 

학교사회복지사로 일하게 된 후  '영매'라는 다큐영화를 보았다.

내가 친한 친구나 이웃, 상담하는 학생들과 저절로 공감이 잘 되고 심지어 그 사람이 말하지 않아도 나 혼자 그 사람과 똑같이 병을 앓기도 한다는 말을 듣고 한 분이 나에게 '무당끼'가 있나보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서 '사이에서'란 영화도 보았다.

보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공감의 힘, 집단 치료의 힘 같은 것이다.

 

 

 

오래 전 근대 서양 과학이나 의학이 미치지 않을 때는 마을마다 무당이 있었다.

이들 중 점만 봐주는 무당과 달리 세습무는 대를 이어서 마을에 살면서 무당을 한다.  이들은 대를 이어 사느니 만큼 인구이동이 거의 없던 시절, 마을 사람들의 가족사를 훤히 꿰고 있다. 시집와서 속앓이 하는 며느리부터 시시콜콜한 기쁨과 슬픔, 원한과 고통을 무당은 다 받아먹고 산다. 그걸 들어주는 상담자의 역할이다. 그래서 상담자들은 아프다. 그러나 속앓이일뿐 발설할 수 없다. 그래서 '임금님귀는 당나귀 귀'에서 처럼 그만의 '오동나무'가 필요하다. 사회복지사로서 나는 얼마나 알고, 들어주고 또 아픈가 돌아보았다.  

 

그리고 무당들은 때로는 '한풀이'를 한다. 그게 굿이다. 또 고깃배가 나가는 시절, 씨부리고 곡식 거두는 시절처럼 계절에 따라 마을 사람들 전체가 준비하고 축제처럼 치르는 거대한 규모의 굿도 있다.

이런 경우는 사회복지실천에서의 집단치료라고 볼 수 있다.

한 여인을 치료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 굿자리에는 가족이 다 모였다. 영매는 자신의 입을 빌어 여인의 한을 풀어낸다. 그리고 주변의 가족들에게 호통도 치고, 울어도 주고 위로도 한다. 그러면서 가족과 여인간의 관계가 회복되고 여인의 가슴 속 응어리가 풀어진다.

마을굿도 그렇다. 마을의 삶에 중요한 큰 일을 두고 마을 사람들이 몇 일 동안을 모여서 음식과 각종 행사치를 물품들을 준비하는데 그 자체가 집단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이것은 당일 굿판 행사로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폭발된다. 이 거추장스럽고 거대한 과정을 통해 마을 사람들은 서로가 다시 하나로 연결되고 단합되며 무당은 철저하게 엄격하고 경건함을 유지시키는 카리스마를 발휘한다. 

지금 학교사회복지 실천현장에서 하는 집단 프로그램에 이런 몰입과 공감, 연결이 있는지 생각하면서 스스로 오히려 부족함을 많이 발견했다.

 

어제 외국인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안산의 원곡동 주변을 지나가다보니 유난히 점집이 많이 눈에 띄었다.

도봉동에서 학교사회복지사로 일할 때 아이들의 동선을 관찰하느라 골목길을 다니다보면 그때 역시 점집과 작은 찻집(실상은 성매매업소)들이 몇 집 건너마다 있었다.

 

 

 

이제 무당은 거의 사라졌지만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그나마 점은 여전히 불안을 해소하고 달래주는 방편이다.

오래 전 마을의 세습무와 같이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엮어주는 그런 사회복지사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무당에게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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