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독일여행을 하면서 완전히 쉬리라 하고 책을 안 가져갔는데 막상 가보니 5시면 왠만한 상점은 다 문을 닫고 6시엔 집에 들어가 저녁을 해먹어야 해서 긴긴 밤동안 할 일이 막막했다. 게다가 독일 텔레비전은 고상한 교양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가 대부분이어서 얼마 보고나니 금세 지루해졌다.
결국 낮에 시장에서 십자수재료를 사와서 작은 작품을 완성했다. 사무실 탁자에 깔고 보니 흐흐.. 내 취향이 드러난다. 나뭇가지를 꿰어붙인 수예품 컴받침에도 빨간 열매가, 오래 전 커플컵으로 사서 소중히 여기는 머그잔에도 나뭇잎과 빨간 열매랑 꽃과 나비들...
아뭏튼,
오늘의 생각은.
요즘 아이들이 자라서 나처럼 컴퓨터도 텔레비전도 안 되고 심심할 때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책도 안 읽히고 사람을 만나기도 싫을 때는 뭘 하며 혼자 조용히 자기를 다스리고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까?
얼마 전 모 고등학교 학교운영위원위원으로 있을 때 회의에서 몇몇 학부모들의 항의가 쏟아진 적이 있다. 아이들이 미술 숙제를 하느라고 밤을 새질 않나, 공부를 못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장선생님이 그 선생님을 좀 주의조처해달라는 것이었다.
허걱...
나는 "그 아이들이 그걸 하면서 얼마나 좋으면 하지 말라고 해도 스스로 밤을 새우겠어요? 하기 싫으면 엄마한테 부탁을 하든지 할 수도 있을 텐데."라며 오히려 이런 전인교육이 더 필요하다고 했지만 교장선생님은 엄마들의 부탁을 깊이 새기시는 모양이었다.
그러고보니 내가 고교시절, 가정숙제 때문에 우스운 일도 있었다. 수를 놓거나 인형옷 크기의 한복을 만들어가기도 했고 뜨개질로 테이블보, 장갑이나 양말을 뜨기도 했는데 어느 가정선생님이 내 작품을 보고 이건 내가 한 것일리가 없다고 끝내 우기시는 것이었다. 아마 그 선생님은 성적이 좋은 학생이니 당연히 공부만 하고 이런 것은 엄마가 대신 해줬으리라고 짐작하신 것 같다.
하긴 우리 식구들은 누구 하나가 이런 숙제를 가져오면 서로 달려들어서 자기도 조금 하게 해달라고 조르곤 했다. 그 덕에 밤마다 오손도손 즐거운 시간이 하나 더 늘어났었다.
두 딸을 키우면서 어려서부터 생활쓰레기들을 모아두었다가 아이들과 온갖 공작품을 만들고 놀고 쓰던 것 수리해서 재활용하고 요리도 자주 같이 했고 악기를 즐겁게 배웠는데 타고 났는지 그 덕인지 아이들이 바느질이나 뜨개질, 요리, 음악, 사진이나 미술 등을 즐기고 어떤 부분은 제법 솜씨도 좋다.
갈수록 학생 땐 그저 자나깨나 공부, 공부만 하고 시험과목이 아닌 예체능은 없애는 것이 '자율교육과정'처럼 되어가고 있다. 요즘 엄마와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손에 연필 외에 붓이나 바늘, 칼, 공 같은 다른 것이 쥐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우리 삶이 책과 연필, 컴퓨터, 텔레비전 뿐이라면 행복할까? 건강은 할까?
어른이 된 뒤에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것일까? 하고는 싶어질까?
과연 창의, 상상력, 탄력성 같은 것은 따로 교육을 시킨다고 만들어질 수 있는가?
입시교육탓이라고만 핑계대지말고, 지금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나도 즐겁게 했던 것을 아이들이 하게 해야 한다.
'동향과 이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남 학교사회복지사업 어떻게 되나? (0) | 2011.04.14 |
---|---|
고양 교복투지전가 수퍼비전 (0) | 2011.04.13 |
강추! 창작판소리극 (0) | 2011.04.11 |
'희망사다리'를 차버려라! (0) | 2011.04.10 |
무당에게 배운다 (0) | 2011.0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