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

괜찮아 ADHD

샘연구소 2019. 11. 19. 08:48
이영민 선생님의 책을 소개한 김에 AHD 관련 책을 한 권 더 소개한다.
필자인 박준규 선생님은 강원도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어찌어찌하여 소위 '학교부적응자'라는 개구장이 초등학생들 몇몇과 학교밖 자유학교랄까? 비인가 대안학교라고 해야할까? '지지학교'란 이름의 교육과정을 운영했다. 교과서와 책상, 교실이 있는 교육과정이 아니다. 삶을 함께 하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몸에 상처를 내면서' 함께 성장의 길에 동반하는 교육자로서 아이들과 먹고 놀고 공부하고 여행하며 지냈다. 그 아이들 대다수가 소위 'ADHD'란 딱지를 단 친구들이다. 잠시 내가 가까이에서 지낸 기간이 있었기에 그 분의 실제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써머힐도 초기엔 이렇게 시작한 게 아닐까?  그는 공간을 유지하기 힘들어지자 아이들과 스페인 순례자의 길 위에서 몇 달을 지내는가 하면 최근에는 호주 남쪽 끝의 태즈메이니아 섬에서 아이들과 자연과 말을 가까이하며 새로운 탐색을 하고 있다. 남다른 오랜 경험과 교육자로서의 올곧은 철학이 있기에 이 책은 특히 교사나 학교 관계자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괜찮아 ADHD
- 살피고 질문하고 함께하는 300일 여행
박준규 지음/ 씽크스마트 (2018)
  
(책 중 몇 구절)   
한국 어린이들의 3대 공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죽음, 부모로부터 버림받음, 서열에서 열등한 결과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순서가 다릅니다. 위에서 1순위 죽음이 3순위에 있습니다. 아예공포에서 죽음이 제외된 느낌도 있습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음교사로부터 버림받음으로 주변 관계의 단절로 확장됩니다.
그러니까 부모에게 일정 수준 이상으로 어필해야 하는데(일정 수준 이하면 버림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함) 그것이 어렵다고 생각하면 비()상한 방법을 씁니다. (37)
70년대부터 한국은 미국의 행동심리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보상에 대한 경험이 행동을 반복하도록 하고 미성숙한 아이를 교육받은 어른으로 키운다는 생각입니다. (65) ...중략... 이런 구닥다리 이론은 서구하쇠에서 이미 사라졌지만 한국에서 여전히 신봉합니다. 물론 짐작하셨겠지만 정치적 이유 때문입니다. (66)
스키장에 가는 이유는 스키를 배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제가 스키를 가르치지 않아도 때가 되면 배울 수 있겠지요. 자전거 장거리 라이딩을 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선생님이 나를 위해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많이 써서 지쳤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마음이 아닌 몸입니다. 선생이든 부모든 나를 위해고단하게 몸을 쓰는 사람을 아이들은 따릅니다. (73-74)
교사가 할 일의 99%는 이렇게 촘촘하게 관찰하는 것입니다. 처방의 핵심은 기술(記述)에 있습니다. 여기서 나온 말이 기술이 처방이다(Description is Prescription)”입니다. (94)
아플 때 부모(주로 엄마)가 일상의 대부분을 서포트하면 아이가 훈련 기회를 잃습니다. 지지학교 아이들은 아플 때 지지받지 않는 것이 좋은 일입니다. 물론 양육자의 심리는 걱정(=슬픔)을 일관되게 유지해야죠. 걱정은 하지만 도움은 없다! 이게 중요합니다. 걱정하면서 네 곁에서 끝까지 응원할게, 이런 태도를 견지해야 합니다.
아이들의 와병은 성장을 위한 필수 영양소입니다. 그래서 아프고 나면 훨씬 큰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양육자가 걱정하기보다는 불안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00)
그리고 아이 입장에서 아픈 것이 반가운 이유는 양육자의 과도한 서비스를 받기 때문입니다. 아플 때 아이에겐 평소의 미션이 모두 사라집니다. (101)
말이 가능한 이후에는 부모가 독점하면 안 됩니다. 갈수록 부모의 거리는 멀어져야 하고, 가족이 아닌 외부 사람과 관계 맺기가 필수입니다. 친구가 아니고 가족도 아닌 어른과 관계 맺기가 공부입니다. 지지학교에서 기숙생활은 아이들에게 친구와 함께 노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주면서 동시에 어른과 관계 맺기를 진행하는 과정입니다. 가족이 아닌 어른이 모방하고 따라야 하는 스승이 되는 것 또한 아이들의 몫입니다. 수신자(제자)의 판단을 송신자(스승)가 강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송신자로서 흔들림 없이 수신자의 자율성을 믿고 기다려준다면 우리 아이들은 모두 배우는 자의 올바른 자세를 확립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144)
따라서 지지학교 교사로서 주어진 미션은 아이들이 억압적 구조에 있지 않다고 설득하고 문자문명에 편입하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173)  
아이들은 어른들이 모르는 사이에, 어른이 보지 않는 사이에, 어른들은 볼 수 없는 장소에 있을 때 성장합니다. 정서적 성장과 지적 성장 모두 그렇습니다. 결론은 잘 지켜만 보시면 된다입니다. (242)   
우리가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다면 적폐라 표현할 수도 있고, 걸림돌이라 말할 수 있는 산더미를 치우기 위해 첫 삽을 떠야 합니다. 나의 첫 삽이 다른 이의 두 번째 삽을 부를 것이라 기대합니다. 기대만 있고 결실이 없을 것이란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왜냐하면 첫 삽을 뜨고, 두 번째 삽을 기대하는 것은 새로운 정서이며, 그 정서는 우리 아이들에게 (언어라는) 매개체 없이 곧바로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정서의 전달로 우리의 목표는 달성된 것입니다. (258)   
선생님으로 만나는 어른은 내용을 직접 전수하려고 하므로 아무것도 전달할 수 없습니다. 또래나 비슷한 집단의 구성원이 만들어내는 정서적 분위기만이 스며듭니다. 어휘나 적절한 문장을 만들어 구사하는 것은 본인 스스로만 가능합니다. 태정이가 형들 틈에서 함께 먹고 자는 것은 최상의 언어치료소에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여럿이 함께 지낼 때만 언어발달도 이뤄지고 학습도 가능합니다. ‘여럿이 함께 생활하기는 충분조건이지 필요조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함께 생활하기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말 배우기나 학습이 불가능하다는 수리논리학적 표현입니다.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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