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샘연구소 2020. 10. 6. 21:57

 

은유 지음,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돌베개(2019)

 

지난 몇 년 새 특성화고 기업체 실습훈련생 또는 특성화고를 졸업한 젊은 노동자들의 사고사, 산재가 여러 번 보도되었다. 우리는 그때마다 분노하고 가슴 아파하며 울고 추모했다. 그런데도 교육계와 사회는 그다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의 눈물과 분노는 이 기울어진 교육의 지평과 부당한 노동구조를 바꾸기에는 덜 축축하고 덜 뜨거운 것일까.

 

김동준은 기업체 실습 중 부당한 노동 부과, 폭력적인 직장 내 동료 선후배 관계, 이를 시정하지도 지원하지도 않은 기업과 노동법, 교사와 교육청 사이에서 스스로 기숙사 높이에서 하늘로 날아갔다.

엄마는 아비에게 묻는다. 아이 뇌가 깨졌나요? 아비는 말한다. 묻지 마라. 그리고 아비는 일체 아이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어미의 말도 회피하고 막는다. 어미는 아비 몰래 울고 아이의 이름을 부른다. 

이민호는 그 좋다는 CJ 계열의 정수 공장에 들어갔지만 과부하된 노동과 기계의 오류로 기계에 끼어 숨졌다.

심장마사지를 너무 심하게 해서 가슴이 다 부서져 입으로 피를 토하고 죽은 아이의 모습을 본 부모는 남은 평생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김동준, 이민호, 그리고 그 밖의 많은 김동준 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의 부모와 친지, 노무사가 저자 은유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이 책은 그들의 이야기를 해설이나 분석없이 그대로 받아쓰기 하듯이 적어내려간 책이다. 저자는 이들 앞에서 '겸손한 목격자'가 되었다.

이 책을 다 읽을 시간이 없다면 김동준 군의 이모 강수정, 사건담당 노무사 김기배의 글만이라도 읽어야 한다.

 

"밑에 있는 걸 드러냈으면 좋겠어요

폭력은 실체가 뚜렷하지 않아요

어린 이들을 섬세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해요"

- 김기배 노무사의 글 중

 

어려운 형편에서 소외된 학생들을 돕고싶은 마음에서 일하는 학교사회복지사들. 

'느린 폭력'이라는 말이 있다. '보이지 않는 폭력'이란 말도 있다.

가난해서, 부모가 힘이 없어서, 특성화고 출신이라서, 그래서 인권이 유린되고 억울함과 분노와 수치심을 날마다 먹으며 살아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억울하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그런 말 앞에 무언가 뜨거움이 있다면 꼭 이 책을 읽어보자. 

그리고 우리의 미래의 김동준 들이 밝고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그들에게 자기를 지킬 힘을 심어주고, 존중받는 경험을 주고, 교육과 사회를 바꾸는 일에 작은 힘이나마 참여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