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

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

샘연구소 2020. 10. 26. 10:28

리베카 울리스 지음, 강병철 옮김, 서울의학서적(2020)

 

사랑하는 사람, 가족, 자녀가 조현병이나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

그러니까 당사자보다도 가족, 돌봐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설명하는 책이다. 

내용으로는 증상에 대한 설명과 함께 가족이 할 수 있는 여러가지 치료법을 소개하고 대처방법을 알려준다.

내용은 너무 전문적이지 않아 이해하기 쉽고 번역도 아주 흠잡을 곳이 없어 잘 읽힌다. 

 

정신질환을 지니고 살기가 그토록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뚜렷한 이유없이 증상이 오락가락하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은 주기적인 경향이 있으며, 그 주기는 사람에 따라 크게 다르다. 상당히 오랫동안 잘 지내는 것처럼 보여 기대가 한껏 부푸는 시점에 갑자기 증상이 도져 가족들을 낙담시킨다.

그러니 좋은 시기를 한껏 즐기고, 나쁜 시기는 최선을 다해 견디는 요령을 익혀야만 한다. (54)

 

옮긴이 자신의 딸이 정신질환을 앓았다옮긴이는 서울의대를 나온 소아과 의사였다.

싱가폴에서 엄마, 언니들과 지내던 딸을 귀국시키고 여러 가지 치료를 받았다.

약물치료, 융 정신상담도. 그러나 아이는 좋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치료에 괴롭힘을 당하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가족은 캐나다로 이민을 갔고 마침 사는 곳 주변에 좋은 의료기관과 의사가 있어서 적절한 약물 치료를 받으며 많이 회복되어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이전에도 있었겠지만 우리의 무지로 알지 못했다.

최근에는 꽤 보인다. 그럴 때 우리는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한다.

학교사회복지사들은 교사들이 의뢰하는 학생 중에 정신질환이 의심되거나 진단을 받은 학생을 어떻게 다루라고 배운 적이 거의 없을 것이다. 

나도 오래 전 조현병으로 입원병력을 가지고 있는 학생과 함께 한 적이 있었다. 아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그 학생에게 미안했는데 그가 세상을 등진 지금 또다시 그 학생이 떠오르고 아픈 마음이다. 외국에서 사는 엄마와 어려서부터 잘 나가는 형, 돈 버느라 바쁜 아버지와 헤어져 할머니와 단둘이 지내던 그 학생은 매우 총명하고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때로 환상을 보거나 환청을 들어 가족이나 교사, 친구에게 돌발행동을 하고 폭력을 저지른 적이 있다고 했다. 내가 볼 때만 해도 약물 효과와 치료로 그런 일은 없을 때였는데 학교생활에서 또 그런 일을 저지를까봐 늘 불안에 시달렸고 등교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수업에 들어가길 꺼렸다.   

 

지금도 정신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과 가족을 생각하며 교사나 상담사, 사회복지사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강병철 선생님이 쓴 옮긴이의 글 시작부분 - 페이스북에도 올리셨다)

아이가 어딘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숙제를 제때 마치지 못하고 모든 것을 불안해했다. 오래전 이야기를 끄집어내며 사람들을 비난하고, 심지어 직접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그쪽에서 기억도 못하는 일을 사과하라고 다그치기도 했다. 나는 한국에서 병원을 경영하고, 아내는 싱가포르에서 세 딸을 국제학교에 보내고 있었다. 아이의 상태가 너무 빨리 변하는 데다, 나는 큰 교통사고를 당해 심신이 피폐했기에 기러기 생활을 접기로 했다. 한국에 돌아온 아이를 만난 순간 뭔가 크게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매사에 불만을 터뜨렸는데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지, 무엇을 조심해야 비위를 건드리지 않을지, 어떻게 해야 마음을 풀어줄 수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항상 즐겁고 웃음이 넘치던 집이 갑자기 24시간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되도록 주변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처리하고 싶었다. 모교 대학병원을 일부러 피했다. 의대 동기가 다른 대학에 소아정신과 교수로 재직했기에 찾아가 검사를 받았다. 친구는 정신질환일 수도 있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정서가 매우 불안할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좋아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우선 약을 먹으면서 지켜보자고 했다. 약을 처방해주면서 함부로 끊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는 그의 태도가 심상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항정신병 약물이었다. 약을 먹으면서 상담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고 하여 가까운 곳에 소아청소년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선생님을 수소문하여 데리고 다녔다. 학업을 이어가야 했기에 한국의 중학교에 편입시켰다. 학교 생활은 지옥이었다. 약 때문에 제때 일어나지 못하는 아이를 아침마다 깨워 학교까지 데려다 주는 것부터 큰일이었다. 아이는 즉시 왕따를 당하기 시작했다. 동급생 중에는 어려서 내 환자였던 아이들도 많았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왕따가 얼마나 조직적이고 잔인한지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학교 선생님들을 찾아가 상담을 해봐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은근슬쩍 아이를 비난하고, 가족의 문제가 없는지 물어보는 데는 미칠 지경이었다.

아이의 상태는 악화일로였다. 어려서부터 있던 틱 장애가 점점 심해지면서 음성 틱과 운동 틱이 동시에 나타나고, 그것이 또 놀림감이 되었다. 강박, 공포, 불안, 극도의 우울증이 찾아왔다. 책상 밑에 있는 가상의 존재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불안을 투사하고, 때로는 위로받기도 하면서 정교한 환상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안 것도 그때였다. 칼로 책상이나 물체에 글자를 새기는 버릇이 생겼다. 자해로 번지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어느 날 아이가 책상에 새겨 놓은 글을 본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무너졌다. “나는 패배자다.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존재다.” 그 순간 우리 가족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그때까지도 노쇠한 부모님을 두고 한국을 떠나야 할지 여러 모로 고민했지만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었다.

그때 가장 간절히 원했던 것은 양질의 정보였다. 도대체 내 자식이 어떤 상태인지,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지, 아이의 미래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면 그 속에서나마 최대한 삶을 꽃피우기 위해 부모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니 그보다 당장 하루하루의 생활에 지치지 않고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야 했다. 정신과 교과서를 다시 읽어봤지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에게 물어봐도 속시원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읽을 만한 책을 찾아보았지만, 우리나라에는 딱히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었고, 당시는 원서를 검색한다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찌어찌 어렵게 손에 넣은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이 책이 우리 가족에게 얼마나 큰 위안과 힘이 되었는지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다 읽고 나자 번역 출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들은 흔히 정신장애를 평등한 병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이 질병이 사회경제적 상태가 낮은 계층에 훨씬 많은 반면, 조현병 같은 주요정신질환은 인종과 민족과 사회경제적 상태에 관계 없이 거의 비슷한 유병률을 보인다. 세계적으로 조현병의 유병률이 1%이고, 주요정신질환으로 분류되는 양극성 장애를 합치면 2.2% 정도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인구가 5천만이라면 환자가 1백만 명이 넘는다는 뜻이다. 그들은 모두 어디 있을까? 의사인 내가 양질의 정보에 이렇게 목마른데, 다른 부모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수많은 불면의 밤을 어떻게 지새우고 있을까? 죄책감과 수치심은 어떻게 극복하고 있을까? 무엇보다 자신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남은 자녀의 삶에 대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을까?

여러 출판사에 책을 소개했지만 선뜻 나서는 곳이 없었다. 별수없이 평소에 친분이 있던 모 출판사 대표님을 들들 볶았다. 환자가 100만 명이니 1퍼센트만 책을 사도 1만부는 바로 나갈 것이라고 허풍을 쳤다. 견디다 못한 그가 마지못해 출간에 동의했다. 번역에 착수한 것은 캐나다로 이민한 뒤였다. 이민 초기에 집 근처 공립 도서관에서 이 책을 옮기며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사서 한 사람이 모습을 보았던지 아예 클리넥스 한 통을 가져다주었다. 그의 친절에 감동하여 또 한참 눈물을 쏟았다. 목과 어깨가 망가진 것도 그때였다. 마침내 책이 출간되었지만 기대와 달리 대실패였다. 5년간 초판도 다 팔리지 않았다. 억지로 팔을 비틀다시피 했던 출판사 대표님을 볼 면목이 없었다. 출판사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손해를 보더라도 내가 봐야 맘이 편할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빛이 될 책을 만들자는 모토로 꼬막 껍질만한 출판사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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