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내가 전쟁영화나 좀비영화, 폭력영화를 피하다보니 가족, 여성주인공 중심의 드라마들을 보게 되는 것 같다.
그 중에 가족 스토리로 시리즈물 세 가지를 소개한다. 영어로 들으면서 보는 것이 편해져서 점점 유럽영화를 잘 안 보게 된다. ㅠ.ㅠ
세 가지 다 배경에서 광활한 자연, 싱그러운 녹색과 바다, 이국적인 풍경을 마음껏 보게 해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이다.
소개하고 싶은 시리즈는 하트랜드, 호프밸리, 그리고 닥터마틴이다.
참고로 무지무지 긴 시리즈들이다! 10년 이상씩 텔레비전에서 방송되었던 것들이니 오죽하겠나!
1. 하트랜드
캐나다 텔레비전 방송에서 롱런 방송된 드라마 시리즈이다. 2007년에 시작되어 지금 잠시 소강상태이지만 다음 시리즈가 준비중이라고 한다.
배경은 로키산맥 동부의 캐나다와 미국 접경지역 어디쯤인 것 같다. 주인공 가족은 그런 곳에서 말과 소 목장을 하면서 말을 길들이고 보살펴주는 일을 하며 산다. 집안의 가장은 홀아비가 된 '잭'이다. 큰 딸 '루'는 뉴욕 금융가에서인가 잘 나가다가 어찌어찌하여 집에 잠깐 들렀는데 주저앉아 실질적인 '가모장'의 역할을 한다. 둘째 딸 '에이미'는 소위 '호스 위스퍼러'이다. 말과 교감하고 그래서 말을 치유하고 길들이는 전문적 재능을 엄마에게 물려받았다. 에이미가 사실상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고 그녀의 성장과정과 그 시기 주변의 가족, 연애, 일들이 얽혀 나타난다.
나는 개, 고양이, 말, 소 같은 동물을 좋아하고 한때 잠깐 승마를 했다. 돈도 들고 말에서 떨어져 다친 뒤 그만 두었지만 여전히 말을 타고 싶다. 그래서 대리만족으로 말타는 드라마나 영화를 찾다가 보게 되었다. 이런 산골짝에선 말이 차보다 더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런데 말은 자동차가 아니라 생물이다. 그런 점을 이 영화가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큰딸 루는 매사에 미리 계획하고 자기가 결정해서 착착 진행하며 자신이 다 콘트롤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사실 참 싫었다. 남이 하면 잔소리고 자기는 다 정당화한다. 그녀의 남성들과의 관계도 나는 좀 짜증스러웠다. 하지만 그녀의 책임감이나 용기, 추진력은 정말 대단하다.
에이미가 말과 교감하고 치유하고 길들이는 과정, 그 과정에서 말 주인과 소통하는 모습에서 많이 배웠다. 마치 강형욱의 강아지 행동교정 훈련 방송을 보면서 배우는 것과 유사하다. 에이미를 보느라고 이 드라마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소위 '촉범소년'으로 잠시 돌보다가 집에서 일꾼으로 데리고 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이에미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된 '타이'가 있다. 입양가정에서 도망나왔다가 이 가족에 합류하여 루에게 입양되어 가족이 된 '조지아' 등이 나온다.
자세한 내용은 다른 블로그에도 많이 소개되어 있고 CBC에 Heart Land홈페이지도 있다. 오랜 기간 방송하다보니 사고도 있고 주인공들도 들락날락하고 하지만 정말 중독자처럼 정주행했던 드라마이다.
2. 호프밸리
원제는 When Calls the Heart 이다. 미국과 캐나다 합작 드라마로 우리나라의 '전원일기' 격이라고들 말한다. 하트랜드의 등장인물 두 명인가가 잠시 단역으로 나오기도 한다. 배경이 된 지역도 비슷한 것 같다.
시기는 북아메리카의 서부개척시대. 맨손으로 몸을 써서 일을 하고 가족이 되고 마을을 꾸리고 함께 살아가는 얘기이다.
여기 주인공은 호프밸리에서 조금 떨어진 도시에서 온 상류층 교사 '엘리자벳 쎄처Thatcher'양과 지역 기마 경비군인 '잭 손튼Thornton'이다. 잭은 사망하지만 그래도 그가 죽자 흥미가 뚝!
상상하듯이 엘리자벳은 거친 탄광마을에 교사를 자원해온다. 마을 사람들은 저런 공주꽈 사람이? 하며 그녀를 흘기지만 그녀의 진심과 성실성에 마음을 열고 마을사람으로 환영한다. 그녀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에서 아동 청소년을 다루는 교사, 상담사, 사회복지사들이 본받을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약한 가운데 강한 모습을 잘 보여준 배우이다. 그녀의 연인 잭은 정말 고리타분한 구식 남성상이지만 자꾸 볼수록 미소에 매료된다. 역시 말타는 모습들이 멋있다!
특히 이 드라마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사람은 '아비가일'이란 여성이다. 남편과 아들이 탄광사고로 죽고 홀로 식당을 꾸리며 어려움을 헤쳐가는데 나중에 남매도 입양하고 죽은 아들의 연인도 딸처럼 품으며 잠깐 마을의 시장역할도 한다. 그녀는 용기와 지혜를 겸비한 리더이다.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지혜와 온유함, 겸손함과 깊은 인내,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가진 모델이다.
또, 전직 뮤지컬 가수인 로즈마리와 결혼한 목재상 기업가 리랜드(리) 부부도 참 매력적이었다.
3. 닥터마틴
닥터마틴은 영국 서남쪽 끝 우리나라로 치면 목포나 나주 쯤의 항구도시에서 지역 보건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마을 생활상이다. 처음엔 영어사투리도 심해서 하나도 못 알아듣겠고 영 진행이 꺼끌꺼끌하고 닥터 마틴이란 보건의가 정말로 감성이라곤 1도 없는 기계적이고 괴퍅한 인간이라 보다 말다 했는데 한 3편 쯤 보고나니 계속 보게 되었다. 다른 캐릭터들이 개성을 드러내면서부터이다. 그러면서 영국 드라마의 개그 포인트에도 슬슬 적응이 되어갔고 한 편에 몇 번은 킥킥 웃게 되었다. 이 드라마도 2004년에 시작하여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롱런 인기 드라마이다.
영국은 전국민 보건시스템(NHS) 하에 의료서비스가 조직되어 지역마다 보건의가 마을사람들의 건강을 돌본다. 일차진료기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거기서 큰 병은 지역의 조금 큰 병원으로 의뢰한다. 영국에서 무료로 아기 낳고 귀가할 때 택시비까지 받았다는 사람도 있고, 서비스가 허술하고 줄을 서서 대기해야한다는 불만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어쨌든 의료는 모든 국민의 기본적 욕구이고 이를 국가가 전국민에게 보편적 복지로 제공한다는 베버리지 사상에 따라 제공된 것이다. 미국과는 그야말로 천지차이, 아니 천왕성과 태양의 차이로 대비되는 곳이다.
그래서 마틴은 정말 바쁘다. 시골 사람들 중 병원을 자주 찾는 이들은 노인이나 육체노동자들이다. 그들은 어떤 이들은 소일삼아 지역 보건의 진료소에 가고 차를 마시며 대기소에서 잡담을 하기도 한다. 진료소는 우리나라 미용실처럼 지역 살이와 사람들의 관계가 다 드러나는 곳이다. 게다가 학교나 길, 바닷가, 식당, 어디든 응급환자가 생기면 그는 모든 일을 중단하고 달려나간다. 어디든지~ 언제든지~ 그가 가방 들고 겅중겅중 뛰는 모습이 선하다. 그는 감성 점수는 0이지만 지역 보건의로서는 정말 최고가 아닐까 싶다. 보다보니 그에게 감성을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무리가 이날까 싶어진다.
그는 런던에서 꽤 알려진 전문 외과의 출신이지만 '피 공포증'이란 것이 있어서 고모가 사는 시골로 낙향했다. 그는 어려서 부모에게 '버려졌다'. 이 드라마에는 소위 콩가루 집안이 많이 나온다. 자식을 낳아도 모성애나 부성애를 보이기는커녕 아이를 증오하고 혐오하고 떼어놓으려 하는 사람들, 그래서 부모와 애착경험을 하지 못한 채 성인이 된 사람들, 서로 애정이나 사회관계를 잘 못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주인공 닥터 마틴과 그가 사랑하는 초등학교 교사 '루이자'이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은 마틴의 두 고모를 빼고는 하나같이 정말 괴기스럽고 제대로된 사람이 없다. 그런데 그들은 사실 우리 안의 어떤 특징을 극대화한 모습일 뿐이다. 서로 반목하는 부모자식간,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아내가 낳은 아이를 아들로 품고 사는 사람, 싱글로 늙어가는 사람, 소위 '조손가정'이다가 할아버지가 사망하고 고아가 된 청(소)년, 독특한 영재성 때문에 학교에서 모두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배척당하는 어린 학생, 소위 삐딱하고 염려스런 청소년들(여자애들 무리가 자주 나온다)... 드라마를 계속 보며 부부란, 부모자식이란, 친척이란, 가족이란, 그리고 이웃이란 무엇일까를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를 이어주는 것, 서로 상처받지 않고 거리를 유지하되 연결하고 존중하며 어울려 살게 하는 관계는 어떻게 가능할까를 연구하게 된다.
그들을 보며 웃고, 기가 막혀하지만 그래도 미워할 수 없다. 가난하고 배운 것, 가진 것 없고 무언가 한 두 군데 아프고 부끄러운 곳들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그냥 그렇게 알고도 품으며 각자 어울려 살아가는 시골 마을이다. 그들의 푼수짓과 개그코드에 자주 웃는다. 아름다운 바다를 U자형으로 품은 육지, 오래된 집들 사이로 난 좁은 골목이 아름다워 지금은 관광객이 밀려든다고 한다.
각 드라마들을 소개하는 블로그들이 많으니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면 그런 설명을 참조할 수 있다. 나는 '가족'이란 관점에서, 그리고 학교사회복지사의 관점에서 관찰하며 인상깊었던 드라마/영화를 소개하는 것인데 그것도 사람에 따라서는 다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이 세 개 시리즈를 보며 마음은 광대하고 아름다운 자연으로 실컷 여행했고 볼수록 마음이 훈훈하고 따스해졌으며 덤으로 영어실력도 좀 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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