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

<구직자들>

샘연구소 2020. 11. 14. 17:04

지인의 초대로 그이의 동생(영화제작자 정필주)이 만든 영화 <구직자들>을 보고왔다.

 

이 영화는  만족스럽고 안정된 일자리는커녕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평생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가난한 군상들의 이야기이다.

 

시작부터 서울의 새벽 노동인력 시장이 나온다. 주인공도 섞여있는 긴 줄 속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서 짧은 증언을 한다. 주인공은 수십년 동안 많은 일을 했다. 열심히 살았고 한때 그럭저럭 벌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은 흡혈귀처럼 약자들을 사지로 몰았고 그는 이제 벼랑 끝에 서있다. 나나 당신과 또는 내가 봉사하는 학생의 가장과 크게 다르지 않지 않은가! 

주인공의 구직 탐방 동반자는 소위 인공이라는 복제인간이다. 그는 원형 인간을 찾아서 헤매며 일을 찾고 있다. 배경이 2220년이라는 것, 복제인간이 출현한다는 것 등이 이 영화를 SF 분류로 넣게 한다. 하긴, 영화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마스크를 하지 않았으니 이거야 말로 SF스럽다. SF가 별 건가? 이게 상상할 수나 있는 일인가? 옛날 공상과학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요란한 마스크를 쓰고 나오듯이 거꾸로 말이다. 

 

영화는 다큐스럽다. 저예산(제작자의 차를 팔아서 보탠 70만원을 포함해 무려 270만원!) 때문에 인터뷰 방식을 썼다고 하는데 그래서 더 실감나고 흥미와 긴장감을 더해주었다. 주인공들은 일자리를 찾아 골목을 누비고 다니며 우리 가난한 평민들의 삶을 서로의 대화와 독백을 통해 복습하게 해준다. 희망이 안 보인다.

왜 그렇게 열심히 돈을 벌려고 하냐고(가능성도 없는데), 그냥 죽지, 왜 죽음을 회피하냐고 복제인간이 묻는다.

주인공은 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너는 왜 인간 원형을 찾느냐고, 인간이 뭔지, 죽음이 뭐냐고 묻는 질문으로 영화가 마무리로 간다.

 

나는 이 결말의 질문들에서 약간 팽팽하던 긴장의 줄이 툭 끊어져 하늘로 풍선처럼 날아가버린 느낌을 받았다. 어잉? 한참 다큐같이 나아갈 땐 동의도 되고 공감도 되고 나름 '인공'이란 복제인간 설정도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왠 사랑?

나는 혼란에 바졌고 초대해준 이에 대한 보답으로 영화감상문을 바로 올리고 싶었지만 자판을 두드리지 못했다.

 

그런데 어제 우연히 유튜브에서 인생에 목적이 있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유명인사의 강연을 흘낏 듣게 되었다. 내가 늘 항변하던 말이다. 한때 긍정마인드라는 말과 함께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불어닥친 목적이 있는 삶’, ‘목적이 이끄는 삶이란 강의와 연설이 유행하였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온갖 진로강연에서 꿈을 강요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거부감을 넘어 구역질을 느꼈었다.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 목적? 살아남는 게 목적이지. 버텨, 버티라구.

그렇다고 꿈이나 이상을 포기하라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선택해서 태어난 게 아닌데 살아질 때까지 그냥 사는 거야. 꿈은 나의 본성이고 결국 그리로 향해 가게 되어있다. 네가 꿈을 꾸든 안 꾸든, 꿈은 버릴 수가 없는 거야. 너의 머리카락처럼 너를 평생 따라다닐 거야. 때로 꿈을 향해 간다고 느낄 때, 또는 꿈을 이루었다고 느낄 때 잠시 기쁨과 희열이 있겠지만 그런 건 잠시지. 인생은 그냥 사는 거야. 살아지는 것이고 버티는 것이야. 특히 우리같은 서민들에게 그 알량한 꿈, 삶의 의미 같은 것을 강요하지 말라구영화의 말미에서 내가 느낀 허망감과 불만족도 이런 생각이 맞닿아있었다. 이렇게 죽지못해 사는 좀비같은 인생이 사랑? 그게 밥 먹여주냐고!

 

그런데, 정말 가난하게 살아봤나? 처첨하게 인간성을 억누르고 살아봤나?

역설적으로 그럴 때 정말 나를 세워주는 것은 때로는 그 상상 속의 솜사탕같은 꿈, 사랑이다

이것이 인간의 신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결국 쓰기로 했다.

 

영화감독이 고매한 철학자처럼 관객에게 지혜를 주거라 빛을 따르라고 할 필요는 없다. 질문할 뿐이다. 흔해빠진 질문. 사랑이 무엇인가, 인생이, 인간이, 죽음이 무엇인가?

그것도 벌레같고 좀비같이 사는 하찮은 구직자들이.

신비하게도 그런데, 그래서, 우리에겐 사랑이 필요하다. 손에 쥐거나 보여줄 수 없어도 그 사랑이라는 것은 배고프고 외롭고 고통 속에 죽어가면서도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기 때문이다. 그것마저도 빼앗겨야 하겠는가

그렇다. 70%의 성인이 고등교육(대학/대학교 이상 학력)을 받은 이 나라에서 우린 사랑, 꿈, 정의, 선 그런 고급 가치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배가 고프고 막일을 해서 목숨을 부지할지언정 우리에게서 존엄을 빼앗아가지는 말라. 

 

학교사회복지사로 가장 주변으로 내몰린 아이들을 학교에서, 가정방문을 해서, 그룹홈에서, 보육원에서, 소년원에서 만나면서 아이들에게 어설피 '꿈을 가져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아이들에게도 사랑과 정의, '선'과 같은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바랄 수 있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게 하고 싶다. 

 

"제 동생은 가난한 독립영화 프로듀서입니다. 장사도 하고 목수일도 하면서 돈을 모아 저예산으로 영화 '구직자들'을 겨우 완성했는데, 관객을 만날 길이 없어 묵혀두고 있다가, 운 좋게도 울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춘천영화제에 초청되었고, 영화진흥위원회 지원금도 받아서 극장 개봉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간과 복제인간이 함께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SF영화인데 200년 뒤를 배경으로 했지만, 다큐멘터리로 느껴질 만큼 리얼합니다. 실제로 오늘을 살아가는 구직자 100명을 인터뷰했으며 그들의 진실한 고백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본질, 일과 행복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묻는 이 영화는 1112일 개봉합니다." - 나에게 초대장을 보내준 지인의 글이다.

 

 

[씨네21] 감독인터뷰기사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6478

 

[연합뉴스]https://www.yna.co.kr/view/AKR20201107016700005?section=entertainment/all

 

 

[서울신문] 평생을 구직하는 인간들영화 구직자들’ - https://amp.seoul.co.kr/www/20201109500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