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

청소년소설, '괴물, 한쪽 눈을 뜨다'

샘연구소 2011. 6. 3. 12:36

 

 

 

가끔 어린이나 청소년이 주인공인 소설, 또는 어린이나 청소년을 독자로 쓰인 소설들을 찾아서 읽는다.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그들 문화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한 나의 노력이기도 하지만 늘 어른 소설 못지 않게 흥미롭다. 그 책들은 하나같이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하는 마력이 있고 하루 안에 읽어낼 수 있는 부담없음도 있어서 좋다.

 

이번에 읽은 책은 <괴물, 한쪽 눈을 뜨다>라는 은이정의 소설이다.(문학동네)

 

배경은 중학교 2학년 남학생 학교의 교실이다.

와우! 다른 글에서도 몇 번 언급했듯이 남학생들에게 중학교 2학년은 정말로 위기이고 '질풍노도의 시기'이다. 아이들은 안으로 밖으로 변화하고 그런 자신을 날마다 생소하게 또는 경탄의 눈으로 바라본다. 내가 내가 아닌 것이다. 그러면서 성장해간다.

 

주인공은 지적발달이 느린 임영섭이란 아이다. 반에서 힘좀 쓰고 꾀쟁이인 놈들의 먹잇감이다. 늘 괴롭힘을 당하지만 그 속에서도 그는 생각과 감정이 있고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영섭이가 가장 아끼는 것은 동물그림책이다. 그는 위기가 닥칠 때마다 이런 저런 동물로 변한다고 상상하며 그 위기를 넘긴다. 또 주변 사람들을 개인적인 특질을 잘 나타내는 동물로 바꾸어서 부르며 이해한다. 그 나름의 생존방식이다.

 

이를 괴롭히는 야비한 개구장이들 정진과 그의 무리들이 있다. 이들은 약한 임영섭을 지속적으로 괴롭힌다. 필통이나 학용품을 빼앗아 부수고 던져버리고 책을 망쳐놓고 좋아하는 동물그림책을 빼앗아 낙서하고 가래침을 뱉어서 쓰레기통에 쳐넣기도 한다.(고런 놈들이 실제로 있다(!) 막판엔 야한 행동을 시키고 즐기다가 결국 걸려서 엄마들이 불려오게 하고 영섭이에게 철저히 사과를 하게된다. 담임으로서도 아주 골치아픈 놈들이다. 꾀가 말개서 요리조리 도망갈 구멍도 잘 만들고 때로는 담임을 난처하게 할 정도로 맞서기도 한다.

 

범생이같지만 야동에 중독(? 일시적 과몰입.. ㅎㅎ) 된 반장 태준, 영섭이가 괴롭힘 당하는 걸 보고도 소심함에 미루거나 모른 척하면서 괴로워한다. 아무리 애써도 떨칠 수 없는 야동중독으로 괴로워하고 정진에게 놀림을 받으며 끝내는 담임한테까지 부끄러운 일을 보이게 된다.

 

이런 좌충우돌 남학생들을 다스리는 선생님들 중에 담임이 있다. 나름 합리적으로, 또 인간적으로 아이들을 다스리려고 애쓰지만 계속 되어오는 아이들의 위협(?)에 좌절하기도 하고 또 다행스럽게 모면하기도 한다. 공감이 많이 가는 부분이다. 지금의 서울이나 경기도라면 체벌을 못 하겠지만 당장 작년까지만 해도 충분히 가능한 장면들도 제법 나온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장면이 영화처럼 상세하게 그려진다. 내가 특히 10여년간 남자중학교에서만 교편생활을 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그런 사춘기 남자 아이들의 몸과 마음, 교실 풍경을 자세히 그려준다. 그 녀석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진땀 많이 흘리게 했는데... 고약한 놈들도 많았는데...  오래 전 제자들 중 몇몇은 지금도 연락을 한다. 어엿한 아버지가 되어있고, 멋진 청년, 아저씨들이다. 외국에서, 심지어 지구의 반대편(엘살바도르였나?)에서 지내면서 연락을 해오는 제자도 있다.

 

막상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사나 부모, 학교사회복지사나 지역사회교육전문가의 입장에서는 애가 탈 일이지만 어찌 보면 그리 애타할 일도 아니다. 다들 그렇게 크니까.

느긋해지자.

 

그래도 정진 같은 놈들은 단단히 혼내주고 나쁜 짓을 못 하게 해야 한다.

태준 같은 놈들도 야동중독에서 헤어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영섭이 괴롭힘 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고민하는 담임선생님 커피 한 잔 타드리고 의논하면서 교실과 학교를 안전하고 행복하게 만들어가야 한다.

불안한 엄마들 마음과 머리를 맞대고 집에서, 동네에서 아이들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게 좋은 부모되기 도와드려야 한다.

 

와우. 할 일 많다.

그냥 천천히 꼼지락꼼지락 ...

 

책 중에서 한 구절

... 담임이 서열 1위로는 보이지 않았다. 덩치가 크거나, 성질이 사납고 독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강한 건 아니다. 교실에서 진정한 강자는 누구일까? 진정한 강자라는 것이 있기나 할까?

    임영섭이 책을 가방에 집어넣고 있었다. <사바나에 사는 동물들>. 교실은 정글이 아니라 사바나였다. 정굴을 나무가 울창해서 숨을 곳이 있지만 사바나는 초원이라서 숨을 곳이 없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드러내놓고 늘 경계를 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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