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에 4일간 다녀왔습니다. 초등학교 동창인 아줌마들 넷이 뭉쳤지요.
베이징은 약 10년 전 무렵 두어번 다녀온 적이 있는데 번번이 여름에 가는 바람에 더워서 고생한 기억밖에 없어서 가고 싶지 않은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절친'인 4인방 초등동창 중 한 명이 안식년으로 베이징에 머무르는 동안 위문공연(?)을 겸하여 방문하자고 하여 가게 되었지요.
당시 시골의 초라한 버스터미널처럼 허물어질 듯 하던 베이징 공항은 어마어마하게 넓고 인천공항보다 더 깔끔하고 편리하게 개조되었습니다. 도시도 서울이나 뉴욕처럼 거대한 빌딩들이 저마다의 디자인을 뽐내며 서있고 넓은 도로를 차들이 가득 메우고 있더군요. 건축에 흥미를 가진 저로서는 건물의 외양을 보며 구조를 짐작하고 새로운 디자인들을 감탄하는 재미가 컸습니다.
예전에 그 많던 자전거는 다 어디로 갔을까? 사람들은 이제 자전거 대신 승용차나 버스, 전철을 탑니다. 그래도 공기는 전에 갔을 때보다 더 좋아진 것 같았습니다. 집이나 차에서 쓰는 기름의 질이 달라진 모양입니다. 이번엔 날씨도 우리를 도와서 내내 맑고 간간이 소나기가 뿌려서 그리 덥지 않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차들의 난폭운전은 예나 같았습니다. 차선이나 신호는 자주 무시되고 횡단보도는 위험천만이었습니다.
자금성의 벽. 나무도 심겨지지 않고 저리 높은 벽 속에서 황제는 얼마나 갑갑했을까.
좁은 옛 골목을 돌며 구경하는 인력거 투어. 땀냄새가 바람에 실려 훅훅 얼굴을 친다. 죄송...
용경협에서 저 앗찔한 써커스 서비스. 봉우리를 잇는 줄 위에 자전거 탄 이와 거기 매달린 이...
옛 공장터를 개조해서 갤러리와 카페촌으로 리모델링한 798거리의 한 조각품.
작은 머리통에 비해 길고 우람한 팔과 다리는 노동자(인민)의 상징인 듯 믿음직하다.
여행을 같이 한 친구 넷은 사실 초등학교 시절에나 졸업 후에 친한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잘 알지도 못했었지요. 그런데 한 10년 전쯤 우연한 기회로 6학년 같은 반 친구들 몇몇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40대 후반 생리적인 변화와 비슷비슷한 가정사, 직장일 등을 나누다가 여자 친구가 좋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고(!) 마음이 통하는 친구 넷이 뭉치게 되었습니다.
이번 여행 역시 발이 불편한 저를 고려해주기도 했지만 다들 구경이나 쇼핑에는 흥미가 없어서 그저 좋은 친구들이 객지에서 함께 한다는 기쁨만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국가기밀'이 누설되었지요. 아무개의 신체사이즈라든가, 저의 치명적 약점인 숫자에 대해 번번이 오류를 범하는 것들이 그런 '1급 비밀' 중에 속하는 것들이었습니다. ㅎㅎ
지난 세월 동안 맏딸들로(우연히도!!!), 맏언니로, 아내로, 며느리로, 엄마로, 유능하고 까탈스런 전문직업인으로 살아오면서 겪은 어려움과 인내, 보람들을 나누면서 서로를 칭찬하고 위로하기도 하고 공감하고 격려하기도 하였습니다. 막상 우리가 찾아간 중국에 머무는 친구는 아침마다 번번이 물과 커피, 과일에 주먹밥까지 곱게 싸가지고 나오며 우리를 극진히 대접해주었습니다.
저는 어디가나 억누르지 못하는 호기심과 열정으로 '세 다리'와 '네 다리'로 만리장성을 오르는가 하면, 우리 중 유일하게 중국에서 기념품(그나마 2만원도 안 되는.. )을 산 사람이 되었습니다. 새벽과 밤에 혼자 텅 빈 호텔 수영장을 누비기도 했는데 친구들에게 "인어쇼"를 기대하라고 했다가 막상 임박해서는 "물개쇼" 보여줄게~ 해서 야유를 받기도 했지요.^^ 이런 저를 느낌으로 아는지 초등학교 6학년짜리 친구의 아들이 정작 질문하고 옆에서 놀아준 다른 아줌마들을 '재미없다', '짜증난다'고 평한 반면 저를 제일 좋아한다고 말해서 친구들을 화나게 하기도 했지요. 어디 가겠습니까? ^^
친구가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