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과 이슈

공부 못 하니까 공부 시킨다?

샘연구소 2011. 7. 14. 00:53

교육복지사업은 학습, 문화, 심리정서, 보건복지 등 네 분야로 사업을 구성하도록 되어 있다.

학교별 사업들을 살펴보면 학습분야 프로그램이 전체 예산 중 33%대에서 많게는 55%까지 차지한다. 가장 큰 비중이다. 학교니까 공부를 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공부 못 하니까 공부시킨다는 논리에는 누구라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금세 발견할 맹점들이 있다. 

 

1. 공부 못하는 애들은 기본수업만으로도 이미 녹초가 되었다.

영화 친구에서라면 그랬을 것이다. "고마해라. 마이 묵으따 아이가!"

이미 지친 아이들을 또 남겨서 공부를 하라고 하면 이것은 고문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방과후수업보다도 교육복지사업에서의 방과후 학습은 지도자 수당이 더 짜다. 그러니 가난하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잘 사는 아이들 가버린 학교에 남아서 저렴한 비용에 와주신 고마운 선생님들 또는 자원봉사자 수준의 지도자에게 교육을 받게 된다. 과연 성과가 나올까? 

이미 지쳐있고 동기도 낮고 능력도 부족한 아이들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아이들이라면 훌륭한 지도자가 특별히 제작된 교재와 열의를 가지고 밀착지도를 해야 가능하다고 생각되지 않나? 이미 자신을 지치게 한 그런 공간말고 좀 편안하고 따스한 다른 공간에서라면 더 좋을 것이다.

앗, 그러고보니 이건 우수반이나 영재학습에서 하는 거네...

 

2. 방과후 비교과활동이 오히려 학교적응력을 높일수 있다. 

이미 오래 전 박현선 교수님(세종대)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읽은 것이다. 빈곤청소년들의 학교적응에는 우리가 아다시피 수많은 위험요인들이 산재해있는데 이것들을 제거하는 것과 동시에 보호요인을 증진함으로써 학생들의 학교적응을 강화시킬 수 있다. 그 요인은 개인요인, 가정요인, 학교요인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나는 학교사회복지에 관심이 있으므로 특히 학교요인에 주목했다.

빈곤청소년의 학교적응을 높이는 학교의 보호요인은 민주적인 학교풍토와 학생들의 방과후 학과외 동아리활동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사들이 가난한(그래서 공부를 좀 못하거나, 쳐지거나 튀는..) 아이들을 존중하고 경청하고 참여하도록 기다려주고 칭찬해주는 학교가 좋은 학교다. 또 방과후에 학습보다도 예체능활동 등 동아리활동에서 자신감을 회복하고 성취감을 느낄 때 학교에 잘 다니고 공부할 힘을 얻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논문을 적용한다면 방과후 학습프로그램이 많은 학교의 빈곤청소년들은 매우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것이며 학교가 가기싫고 공부가 더 지겹고 선생님이 더 피하고 싶어질 수 있음을 짐작해야 한다. 따라서 교육복지사업에서 50%가 넘는 학습프로그램들은 세심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대신 문화활동을 더 늘리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방과후학습에 쓸 수 있는 다른 예산도 넘치는데 말이다.

 

3. 공부 못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어떤 아이가 성적이 계속 떨어진다. 방과후 학습 프로그램을 하면서 성적이 오르고 잡념을 떨칠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면 정말 다행이다. 하지만 성적이 오르기는 커녕 수업에 빠지고 도망을 간다. 이런 일은 너무나 많다.

어쩌면 그 학생은 얼마 전부터 아버지의 실직으로 가정형편이 급격히 불안해졌으며 부모님의 불화, 가정폭력을 목격하고, 또 당해왔고 최근 이혼에 이르게 되었다.

또 어떤 학생은 오랫동안 제대로 먹지 못해서 이가 다 빠지고, 영양결핍으로 집중력이 약하고 오래 앉아있기도 힘든데다 자주 거르다보니 만성위염까지 있다. 아이는 자기가 왜 집중이 안 되는지도 모르고 선생님이 말하는대로 자기가 나쁜 아이라고만 생각한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공부 못 하니까 남아서 공부해라"라는 대책은 얼마나 얄팍한 조치인가.

아이를 공부기계로만 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공부, 아니, 생존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을 되찾게 도와주어야 함이 우선이다. 인간이니까. 아이니까. 

 

4. 할 만한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과목을

학습프로그램의 대부분은 가장 공부 못 하는 아이들을 시키고 또 시킨다. 못 하니까 시킨다. 시켜도 못 하니까 다음 학기에도, 다음 학년에도 또 시키고 시킨다. ... 뭐가 잘못 되었다는 느낌이 왜 안 드는지 모르겠다.

교사시절 어떤 어머니가 나에게 말했다. "우리 애가 영어를 못 해서 학습지, 학원, 과외하고 한 달에 몇 번은 외국인 회화까지 시키는데도 별로 발전이 없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나는 그랬다. "당장 다 끊으세요. 그 아이가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것에 그만큼 시간과 돈과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 아이는 벌써 그 분야에서 당당한 선수가 되어있을 겁니다."

그래서 학습프로그램도 전교에서 가장 밑바닥을 박박 긁어서 계속 닥달하기보다 조금 가능성이 있는, 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을 집중지원하면 좋겠다.

영어, 수학에만 치중하지 말고 오히려 학습부진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노력하면 성과를 올리기 쉬운 다른 과목들을 취해보면 어떨까? 단기 과목별로 해도 좋을 것이다. 사회반, 역사반, 과학반, 기술가정반...  또, 영어반이라도 꼭 강의식으로만 할 게 아니라 다양한 체험식으로 하면 얼마나 좋을까? 교사들의 상상력은 꼭 '인센티브'를 주어야만 발동하나?

 

6. 부진아반의 비교육성, 비과학성 

우리가 본받으려고 하는 스웨덴이나 핀란드에서는 중학교까지 등수를 매기지 않으며 '수준별' 학습반을 편성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미 수십년째 그렇게 해서 PISA에서 1등을 했다.

출처는 잊었지만 얼마 전에 수준별학습은 상위 10%에게만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를 본 적도 있다. 하위학생들만 모아서 할 경우 오히려 학습의 역동이 일어나지 않고 모델학습의 대상이 없어서 성과를 볼 수 없다고 했다. 수긍이 간다. 실제로 그렇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부진아반을 하는 것일까? 

본 수업을 바꿔야 한다. 모르는 것은 학생 탓이란 교사의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 학생은 모르는 게 당연하다. 알게 하는 것이 교사의 책임이다. 교사는 가르치고 따라오지 못하는 건 자기 탓이고 부모 탓이니 알아서 책임지라는 것은 의무교육이 취할 태도가 아니라고 본다.

 

나는 운동을 잘 못한다. 내가 운동 잘 하는 사람만 성적 잘 받고, 대학 잘 가고, 취직 잘 되고, 돈 많이 버는 세상에 살았다면 난 얼마나 괴로웠을까! 수업 내내 체육수업하고, 괴롭고 지쳐있는데 남아서 또 운동하고, 방학때도 학교가서 체육하고, 아무리 해도 안 되는데, 그래도 학교는 다녀야 하고, 학교가면 또 체육 해야 되고.... 게다가 난 가난해서 대학생 자원봉사자한테 보충수업받고 딴 애들은 박태환, 김연아, 박지성한테 배우고 그런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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