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들이 우리의 스승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우리는 삶에서 고통과 불행을 없애고 싶어한다. 그리고 특히 사회사업을 하는 이들은 불행에 빠진 사람,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한다. 그래서 사회사업을 공부하는 이들이 많다.
학교사회사업도 마찬가지다. 공부를 못하거나, 튀는 행동으로 선생님들의 눈총을 받거나,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위축되어 있는, 친구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질서를 어지럽히는 아이들을 '바로잡고' 싶어한다. 또 가난한 아이, 부모+자녀의 관계가 아닌 가정의 아이들, 좀 발달이 뒤지거나 느린 아이들을 보면 다독여주고 이끌어주고 사랑과 관심 외에도 무언가 더 기회와 자원, 돈, 물건, 주기를 원한다.
나도 그렇다.
그러는 사이 어느 새 그런 아이들은 '불쌍한' 아이들이 되어간다.
그리고 나는, 사회사업가는, 지역사회교육전문가는 그들을 동정하고 지원하는 자원과 지위, 권한과 권력을 가진 전문가가 되어있다.
우리는 모든 아이들이 '바른' 생활을 해야하고 '건강'한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이상을 실천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런 '바른' 생활, '정신건강'이란 규정을 수긍하고 따르는데 동의가 안 될 때가 종종 있다. 최근 읽는 책들 속에서 또 한 번 생각을 되씹어 본다.
1.
미국의 정신의학자 아놀드 루드비히라는 이는 인간이 고통을 이겨내는 노력에 대해 강조했다. 그는 예술가, 작가, 발명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어떻게 고통을 이겨내며 20세기의 뛰어난 업적을 이루었는지 10년에 걸쳐서 1004명을 대상으로 추적조사했다.
그 결과, 우리 시대에 살았던 모든 위대한 천재들은 모든 사람들이 믿고 있는 보편적인 관점을 버리고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면서 고독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힘이 있었음을 발견했다.
이들은 또한 우울, 불안, 알코올 의존증 등의 정신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심리적 불안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점들이 그들을 무력한 존재로 만들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하여 중요한 창조적인 업적을 이루고 새로운 길을 열었으며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고 새로운 학파를 등장시켰다.
(M. 스캇 펙 저, <그리고 저 너머에> p105-106)
2.
프로마 월시는 <가족과 레질리언스>라는 책에서 수십년간 어린 시절 '취약'한 양육조건과 '위기'를 거쳐 성장한 이들을 추적조사했다. 그리고 가난한 가족, 부족한 양육자를 탓하는 우리의 타성에 반대한다.
오히려 어릴 적 전쟁과 학대, 성폭력, 빈곤, 이혼 등의 상처를 입은 아이들 대다수는 성인이 되어서 우울하고 이혼하고 건강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지낸다고 주장한다. 그 힘을 레질리언스(회복력, 탄성)이라고 말했다.
개인의 레질리언스를 강조하다보면 불평등하고 정의롭지 못한 환경이나 조건, 제도들에 대한 비판적 감시와 사회행동을 외면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충분히 나에게 깊은 통찰을 주었다.
굳이 그런 불행의 조건들을 강조하고 불쌍히 여기고 치유하려고 애쓰기보다 그런 환경과 관계없이 현재 살아있음 자체를 격려하고 축복하며 오히려 미래를 열어나가기 위해 노력하게 하는 것이 나아가서 사회를 바꿀 수 있게 한다는 역발상을 수용하게 해주었다.
3.
최근 한국의 신경의학자인 강동화의 저서 <나쁜 뇌를 써라(위즈덤하우스)>란 책이 나왔다.
저자는 모든 사물이 양면성을 지니듯, 우리 뇌도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집중과 산만, 합리화와 의심, 기억과 망각, 거짓과 긍정, 이성과 감정, 열정과 냉정, 중독과 몰
입, 뇌 질환과 창조성 간의 긴장과 대립이 그것이다.
그런데 둘 중 뇌의 부정적 측면은 언제나 우리 삶에 나쁘게만 작용할까? 이 책은 특히 우리에게 도움이 안 될 것 같고,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그래서 잘 사용하지 않으려 하는 부정적인 뇌 기능들, 즉 ‘나쁜 뇌‘ 에 주목한다. 우리가 실수하고, 산만하고, 합리화하고, 왜곡하고, 망각하고, 감정적이고, 냉정하고, 중독되기 쉬운 이유를 알려주며, 그런 ‘나쁜 뇌’ 이면에 숨어 있는 긍정성과 창조성을 일깨운다.
저자는 신경과의사로서 수많은 뇌졸중 환자를 만나온 강동화 박사는 삶을 한순간에 뒤집어놓은 심각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을 앓기는커녕 질병 이후 오히려 더 행복해졌다고 말하는 ‘행복한 뇌졸중 환자’들에게 호기심을 가졌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 믿어 의심치 않는 것들이 과연 옳은 것일까? 그게 진실의 전부일까?’ 인간의 마음과 뇌를 공부하던 저자에게 이런 의문이 끊임없이 다가왔고, 마침내 그는 그리고 나쁜 뇌는 삶의 균형을 위해 꼭 필요한 뇌다’라는 뜻밖의 결론에 도달했다.
이 책은 이처럼 우리가 부정적으로 여겨 버려두다시피 한 뇌 기능들을 환기시켜주며, 어느 한쪽은 항상 옳고 다른 한쪽은 항상 그르다고 판단하는 편파적이고 이분법적인 생각과 태도에서 벗어나 두 얼굴의 뇌가 만들어가는 역설의 하모니, 그 균형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고 가르친다.
(인터넷서점 알라딘 책소개 aladin.co.kr)
어쩌면 별로 연관이 없을 듯한 세 권의 책이 나에게서는 희미하게 연결되고 있다.
그리고 무심코 내 머리속에 자리잡고 있는 '정신건강', '위험', '고통', '불행', '건강한 청소년', '행복한 아동' 등과 같은 용어들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집중보다는 산만이 많아보이고, 무언가 결핍되어 있고, 학교에서 삐걱거리거나 잘 안 맞고, 행복하기보다 우울하고, 건강하기보다 병들어 보이는 그런 아이들을 틀에 맞추고 치유하려고 하기 이전에 발견해야할 이들이 가진 진정한 힘은 무엇일까?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할까?
그런 질병이나 '불건강' 조차도 삶의 한 단면이며, 그 자체가 힘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꼭 없애고 피해야할 '부정적'인 것들이 아니라 그것들조차 품고 극복하며 살아가야할 인간의 모습들이다. 사실 건강하다고 하는, 별 문제 없다고 하는 우리 모두가 달리 보면 문제투성이이며 여전히 부끄럽고 아픈 상처들을 보듬고 살아가지 않는가?
그렇다면 학교사회사업가, 지역사회교육전문가들, 위클래스 담당 상담사, 그리고 교사들은 가난하고 부모 없는 공부 못하고 문제행동하는 아이들에게서 무엇을 봐야할까.
진정한 도움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잘 하고 있는 것일까.
그냥 그런 아이들을 유별나게 보지 않고 같이 살아가려는 '이웃'으로서의 자세.
내일은 또 다르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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