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소통' 또는 '의사소통'이란 주제가 인기이다.
전화가 없는 집이 없고, 거의 모두가 개인 핸드폰을 가지고 있으며 잠시도 쉬지않고 누군가와 채팅을 하고 있고 인터넷에는 메일이 하루에도 수십통씩 드나들고, 페북과 싸이월드에서 인터넷 동호회에서 늘 사람을 만나고 수다를 나누면서도 우리는 소통이 어려운 것이다.
학교에서도 교사와 학생의 효과적인 의사소통, 학부모와 자녀의 효과적인 의사소통 등을 주제로 강의를 해달라고 한다. 그리고 의사소통의 기술을 알려달라고 한다.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의 지역사회교육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교육에서도 의사소통 기술을 가르쳐달라고 한다.
학교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에게 당신들이 주로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으니 대다수가 관계이고 소통이라고 대답했다.
의사소통.
물론 기술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진정한 의사소통은 '기술'만으로 되지 않는다고 본다.
우리는 심지어 '말없이 잠자코 바라봄' 또는 '함께 한숨쉬고 눈물흘림'으로도
훌륭하게 소통할 수 있다.
'침묵이 금'인 우리나라식 의사소통은
미국식 거대다양문화사회에서의 의사소통기술과 다른
더 넓고 깊은 의사소통의 전통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소통은 왜 필요한가?
관계를 위해서?
관계는 왜 필요한가?
일의 실적을 만들기 위해서? 내가 나중에 필요할까봐 미리 포석을 깔아두려고?
난 그런 관계를 위한 소통은 싫다.
진정한 소통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이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사람에 대한 이해와 공감, 관심이 없이 소통만 하고자 하는 것이 무슨 기술이 필요한가? 아니 그건 그냥 기술로 끝날 것이다. 그런 소통기술로 삶에 어떤 좋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내 삶이든 그의 삶이든.
누군가 얄팍한 지식과 기술로 나를 상담하려는 듯 소통을 시도할 때, 또는 이기적인 의도로 관계 관리를 위해 소통을 시도할 때 나는 실망하고 소통에 응하고 싶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사람이 싫어진다. 아이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또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 자기의 뜻에 찬성하지 않으면 소통이 안 된다고 상대를 탓하기도 한다. 자기 의견에 공감하고 찬성하고 존경하고 칭찬하면 소통이 잘 이루어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소통이 안 된 것이고 거기에 의사소통의 '기술'이 부족해서 그런 것일까? 나는 자기가 옳다는 생각이 확고한 사람들 속에서 소통불능의 벽을 느끼기도 한다. 그들이 틀려서가 아니라 그냥 소통이 힘들다.
캠프 숙소에서 남자녀석들 두 놈이 심하게 싸웠다. 나는 싸운 두 아이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답답하고 속상해서,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몰라서 신새벽에 그 아이들과 넓은 운동장을 돌도 돌아 걸었다. 아이들과 아무 말도 안 했지만 몇 바퀴를 도는 동안에 나는 내 안의 가치관과 갈등, 욕구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되었고 그것이 아이들과 소통의 물꼬를 터주었다.
진정한 소통은 존중에서 출발해야 한다. 존중받는다고 느낄 때 소통이 된다.
그리고 소통하고자 하는 사람인 내 안의 욕구들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진정성이 담아진다고 본다. 사실 이것은 더 어려운 차원의 소통의 측면이다.
나는 교사이든, 학부모이든, 관계와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학교의 사회복지사이든 소통의 기술을 익히는데 그치지 말고 진정 사람과 사회에 대한 이해와 존중에 더 집중하기를 바란다.
그 깊고 오묘한 인간의 세계를 더 겸손하고 정직하게 또 흥미진진하게 뛰어들어보기를 바란다.
좀체로 헤어나올 수 없는 그 인간에 대한 탐구여행. 그 길에서 아이들도 만나고 교사도 만나고 학부모도 만나고 동료도 만나는 것이 아닐까? 진정한 이해는 '동행'과 떨어지기 힘드니까.
그것은 결국 나를 알아가는 여행이며 세상을 알아가는 삶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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