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과 이슈

교육복지는 퍼주기?

샘연구소 2011. 10. 18. 19:04

학교를 다니며 교장, 교감 선생님들로부터 종종 "교육복지는 애들 버릇 망치는 퍼주기 사업이다.", "교육부나 교육감이 정치적 의도에 따라 이런 시혜성 프로그램을 학교에 시킨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이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저는 마음이 아득해집니다.

 

어느 초등학교 교감선생님으로부터는 이런 말씀도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연필 없다고 교무실에 와서 '연필주세요'하고 고마운 줄도 모르고 쓰다가는 잃어버려도 찾지도 않고 귀하게 쓰지 않는다. 학용품 거저 주고 교육복지사업 하니 애들이 이렇게 되었다."고 걱정하십니다.

 

아. 걱정이 크시구나... 하지만 또 한 번 마음이 아득해졌습니다.

 

그리고 두고두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그래도 학교에서 받을 수 있구나.

교무실에 가서 필요한 학용품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에 오히려 저는 참 감사하고 기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학용품을 요구한 아이들 중에는 학교가 아니면 누구에게도 요구할 수 없는 아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 아마 그런 아이들이 학교에서 그런 요구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집에서 늘 챙겨주는 분이 계시다면 굳이 학교에서 그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학부모라면 "세상 참 좋아졌다. 학교가 이런 걸 다 해준다."고 고마워할 것 같습니다. 한 시름 놓을 것 같습니다. 먹고살만한 저조차도 일하랴 살림하랴 그 와중에 초등학생 시절의 두 아이 준비물 챙겨주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야단도 꽤 들었습니다. 여러아이 가르치려하지 말고 당신 자식 하나나 잘 챙기라고요... ㅠ.ㅠ

 

참 잘 된 일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물건 귀한 줄 모르고, 고마운 줄 모른다고 합니다.

이것은 비단 가난한 아이들만의 일은 아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 학용품을 학교에서 줄 수 있는 건 좋은 일이고 마땅히 해야하는 일입니다. 우리나라가 1970년대도 아니고 OECD 가입한 국민소득 2만불을 구가하는 세계 선진국 중 하나입니다. 출산율이 줄어드는 시대에 초등학생 학용품은 기본입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이런 것까지 나라에서 거저준다는 생각은 궁핍하던 시절에나 어울릴 사고방식입니다.

 

숨쉬는 강 둑에 돈 들여 숨막히게 시멘트도 바르는 걸요. 아름다운 자연 덤불을 걷어내고 잔디심고 나무 옮겨심고 맨발로 걸어도 행복할 흙길 위로 포장도로 낸다고 막대한 세금도 쓰는 걸요. 나라돈이 아깝다면 다른 곳에서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입니다.

 

그러나 고마운 줄 모르고, 아껴쓸 줄 모르는 것은 교육이 해결해야할 과제입니다. 부모들도 그렇게 안 키우는 시절, 학교에서 어떻게 하면 빈부를 막론하고 아이들에게 물자 귀한 것을, 아껴쓰는 것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교육복지사업 탓이 아니라 가정교육과 어른들의 생활, 교육 전반에 걸친 문제이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교실 한 켠에 혼자 외톨이처럼 웅크리고 지내던 00가 생각납니다.

사회복지실 프로그램과 저의 중간역할로 활기찬 학교생활을 하게 되면서 종종 복지실에 와서 숙제할 종이를 얻어가기도 하고, 집에 프린터가 없다고 컴퓨터로 숙제한 것을 출력해가기도 하고, 심지어는 준비를 못 해온 친구를 데리고 와서 그 친구를 위한 종이까지 얻어가기도 했었습니다.

저는 그녀석에게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해." 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제 딸애들에게도 학용품을 주면서 감사인사를 요구한 적이 없으니까요.

 

00는 잘 지낼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쯤 아니면 더 커서라도 그 시절을 미소지으며 회상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고맙게 생각할 것입니다. 고맙게 생각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