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과 이슈

지역사회교육전문가란?

샘연구소 2011. 11. 6. 18:28

내가 1년짜리 계약직인 서울시교육청시범사업,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기획사업의 학교사회복지사로 일하던 시절을 생각해본다.

 

부장, 교감, 행정실장, 교장 가까스로 시간 맞춰 이틀에 걸쳐 결재서류에 다 도장을 받았지만 사소한 실수로 교장실에서 다시 재작성하라는 말씀을 들을 땐 눈물이 쪽 빠졌다. 나중엔 아무리 기안문에 빨간펜으로 지적을 받아도 "어마, 또 틀렸네!" 하면서 능청을 떨 수 있게 되었지만 말이다.

 

아이들은 나에게 기대와 열정, 기쁨과 보람 뿐 아니라 실망과 눈물을 모두 안겨주었다. nine to five 라는 근무시간은 나에게 의미가 없었다. 근무장소도 복지실뿐 아니라 때론 마을 놀이터였고, 때론 아이들의 집이었고, 또 때론 우리집이기도 했다. 어떤 아이들은 감히 나에게 '엄마'라고 부르며 복도에서도 뛰어와 마구 안겼고 내 별명은 파마머리를 빗대서 '뽀글맘'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차라리 학교사회복지사를 그만 두고 동네에 반지하방이라도 하나 얻어서 아이들 불러서 저녁 차려주고 숙제 봐주고 엄마 아빠 돌아오실 때까지 데리고 놀아주고 싶어졌다. 그러지 못하는 내가, 학교에서만 만나며 근본적인 가정환경, 삶의 여건을 바꿔주지 못하는 나 자신을 야단쳤다.

 

교육복지사업에서 일하는 지역사회교육전문가인 후배들이 학교에서 일하는 것을 보며 늘 마음이 짠하다. 교사경력 13년이 넘는 나도 동료였거나 선후배였던 교사들에게 설움을 당하고 소외감을 느겼는데 처음 교사들 세상 속에 끼어든 외톨이 사회복지사들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는지 보면 정말로 화도 나고 안쓰럽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쑥쑥 자라나 나보다 더 크게 자란다. 이제 후배이자 나의 스승이 되어가는 구리남양주 교육청의 학교사회복지사들과 학교와 지역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비전을 구체화하고 그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지역사회교육전문가들에게 "교육복지가 무엇이고 지역사회교육전문가는 무엇 하는 사람인가?"를 생각해보고 글짓기를 숙제로 해오라고 했다.

 

다음은 중학교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샘의 보고서를 간추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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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회복지사를 꿈꾸어 현장에 뛰어든 26세 여자이다. 

 

<나의 하루 일과 >

08:00~09:00

출근, 환기, 청소, 커피 한 잔

09:00~10:00

프로그램 강사비 기안, 간식 품의, 출장기안

10:00~11:30

교장, 교감, 부장에게 연수계획 보고(욕 바가지로 먹고 꼭 참석해야 한다며 굽신거려서 허락 얻어냄...)

동아리 활동비 지원에 대해 타 지전가와 전화의논

교장과 담당 교사에게 결정사항 전함.

청소년지원센터 상담 의뢰. 부장, 교감, 교장에게 구두로 이야기한 후 상담협조 공문 발송

11:30~12:00

배움터 선생님이 복지실 찾아와 여행 다녀온 이야기 들려주어 잡담 나눔

12:00~12:30

점심식사

12:30~12:45

사서, 과학보조, 교무보조들과 차 마심

12:45~13:10

복지실 개방. 아이들과 보드게임 운영. 뒷정리 지도하고 싸우는 아이들 발견하고 말림.

13:10~13:20

점심시간에 싸웠던 아이들 따로 상담

13:20~14:00

위클래스에서 상담해온 학생이 청결치 못해 아이들에게 혐오감을 준다며 복지실에서 담당해달라는 교감의 전화를 받아 상담, 담임과 함께 이야기 나눔.

14:00~14:20

복지실 부근 청소 지도

14:20~15:00

가출한 학생 담임교사와 이야기 나눔

15:00~16:00

연수 제출 과제 작성

집단상담 학생들 면담하고 체크리스트 작성 지도

교감, 교장에게 출장 인사드림

16:00~16:30

복지실 청소 및 정리하고 연수장소로 출발

16:30~21:00

우리교육청 PC, 지역사회교육전문가들과 박경현 소장님과 함께 하는 연수모임 참가

 

첫 해.

교육복지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는 복지관, 지전가는 행정담당자였다.

대학시절의 꿈과는 딴판인 학교에서의 근무. 6개월만에 교육청으로 달려갔다.

“저 그만 둘래요.”

하루하루는 전쟁터 같았고 사람들이 무서웠다.

 

2년차.

아이들을 찐하게 만나기 시작했다. 출근길이 설레었다.

상급 교사들에게 인정을 받고 학교 안 교직원들과의 관계도 좋아졌다. 밤늦게 야근을 해도 다시 아침이 기다려졌다.

“내년엔 어떻게 해야할까?”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지역사회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더 완벽하게 잘 하고 싶었다.

 

3년차.

힘들다. 아이들에게 무작정 퍼주기 싫었고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쉬는 시간엔 컴퓨터를 끄고 아이들과 수다를 떨었다. 바뀐 교장을 찾아가 이 사업의 의미와 내 역할에 대해 당당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돌아온 교장샘의 한 마디.

“따로국밥이라 이거지?”

교육복지사업과 지역사회교육전문가의  정체성. 마음과 머리로는 알겠는데 입안에서 맴돈다. 좀더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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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하루 일과는 비슷비슷하다. 비록 교육복지의 원대한 소명감을 가지고 들어왔지만 고작 하는 일이 간식 품의, 방과후 프로그램 출석 체크 따위일 땐 스스로 초라해지기도 한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마치 밑빠진 독에 물붓기처럼 가난한 가정은 늘어나고 아이들의 문제는 더 심각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은 즐겁고 당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교육전문가로서 존재의 의미를 놓치지 않는다.

 

나는 지역사회교육전문가에게 아무리 힘들어도 3년은 참고 해보라고 한다. 그제야 무언가 좀 내 뜻대로 할 만한 여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3년에는 새로운 도약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가 모였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해 온 숙제를 발표했다. 때론 숙연하게 때론 깔깔대며 발표를 들었다.

어느새 시간은 늦은 밤이 되었고 우리는 해답보다 숙제를 안고 헤어졌다.

한편으론 무겁고 한편으론 뿌듯한 시간이었다. 방안에 남은 그들의 웃음소리가 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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