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과 이슈

환경운동가들에게 배운다.

샘연구소 2011. 3. 14. 20:59

(출처: 한겨레신문 3월 14일자 12면,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467864.html)

 

한겨레신문 3월 14일자 사회면에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레인보 워리어호의 참치잡이 모니터링 보도기사가 실렸다. 국내 일간지 최초로 기자가 직접 이 배에 승선하여 모니터링 활동에 참여하며 취재한 것이다. 레인보 워리어호는 지난 3월 9일부터 한국·일본 바다에서 참치잡이 모니터링을 진행중이다.

 

 

보도에 의하면 최근 태평양참다랑어 치어의 남획이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태평양참다랑어는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고급 횟감(참치)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개체수가 적어 멸종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해보니 한국의 경우 계속 어획량이 늘어 1980년대 수십t에서 2000년대 1000t 이상으로 치솟았는데 이들 대부분이 완전히 다 자란 성어가 2m가 넘는데 비해 치어수준인 평균 57.8㎝(2009년)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환경단체는 이와 같은 마구잡이식 치어잡이가 태평양참다랑어를 멸종으로 이끌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그린피스의 톨바넨 국장은 “태평양참다랑어 어획량의 90% 이상이 2년생 이하로, 대만과 한국, 일본 해역에서 남획이 중지되지 않으면 멸종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참다랑어는 20년을 넘게 산다고 한다(헐...). 한국 바다에 사는 참다랑어까지 국제 환경단체의 주시 대상이 된 것은 그동안 한국이 일본, 대만과 함께 태평양에서 눈다랑어·황다랑어를 싹쓸이한 공범으로 인식된 것과 무관치 않다. 톨바넨 국장은 “2008~2009년에 지정된 해역이 아닌 곳에서 조업을 하는 한국 선박과 만나 그린피스가 그물을 끌어올리는 등 마찰을 빚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린피스는 태평양참다랑어에 대해서도 치어잡이와 국제거래 금지를 요구하고 있다.

 

기사를 읽으면서 전에 보았던 영화 ‘the cove'가 생각났다.

 

                         (출처: 네이버 영화)

 

더 코브: 슬픈 돌고래의 진실(다큐멘터리 | 미국 | 91 분 | 개봉 2009.10.29 | 감독: 루이 시호요스 | 출연: 조 치숌, 맨디-래 크루이크생크, 이사벨 루카스, 리처드 오베리)

 

이 영화는 돌고래 남획과 학대를 반대하는 환경운동가들의 활동을 다큐멘터리로 찍은 영화이다.

우선 바다를 배경으로 한 많은 장면들이 너무나 아름답고, 눈과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여기에 나오는 돌고래는 정말로 인간처럼 감정을 가지고 표현하며 인간과 의사소통하기도 한다.

 

무대는 일본 타이지(오사카로부터 10킬로미터 정도 남쪽의 태평양에 면한 마을, 주민 대다수가 고래고기를 먹어 수은중독이었다. 지금은 고래잡이를 하지 않는 조용한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라는 바닷가마을,  고래 남획에 대한 환경운동가들의 첩보원 못지않은 치밀한 증거채취와 고발 활동이 주 내용이다. 일본측이 주장하듯이 문화적 다양성이나 지역 전통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인간과 같은 생명체인 동물 존중의 문제와 전 지구적 종 보호의 측면에서는 매우 잔인하고 몰이성적인 집단행위로 비쳐진다.

 

무엇보다 내가 감동한 것은 주인공과 친구들의 그 침착하고 치밀한 계획과 행동, 어떤 압박과 만류에도 굴하지 않고 끝끝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꾸준히 일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어떠한 어려움과 방해, 장애물에도 포기하지 않되, 시종일관 비폭력 투쟁원칙을 지킨다. 결코 굴하지 않는 비폭력 저항은 간디의 정신이기도 하고 내가 요즘 붙잡고 있는 예수의 모습인 ‘온유함’과도 상통한다. 동시에 창의적이고 기발한 방법도 고안해내며 그렇게 긴장되고 위험한 여건에서도 일을 무겁게만 끌고 가지 않고 묵묵히 담담하게 때론 즐겁게 한다는 것이다. 당장 발 앞의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멀리 보고 반경을 크게 그리기 때문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세계회의장에 주인공이 직접 몸에 건 TV 모니터에 현지 촬영한 필름을 튼 채로 회의장을 천천히 돌고 그러다가 체포되어 쫓겨나는 장면, 그리고 비오는 날 도시의 네거리 한 복판에서 역시 TV를 몸에 걸고 행인들에게 소리없이 외치는 장면을 보며 결국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나는 무엇인가를 위해 그렇게 온전히 바치는가? 그 '무엇'이 있는가?

있다면, 그 무엇을 위해 나는 그처럼 ‘온전히’ 헌신하고 있는가?

그처럼 느리고 조용하지만 단단하고 변함없이 진실로 행동하는가?

 

나 자신에게 묻게 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