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과 이슈

암 환자의 삶

샘연구소 2012. 3. 22. 13:50

지난 달 여행 중에 덴마크에서 대학동창이던 미국 사는 친구에게서 메일이 왔다.

영어로 길게 쓴 에세이가 덧붙여져 있었다. 간단한 안부인사로 답 메일을 보냈다. 지금 통화할 수 있냐고 다시 메일이 왔다. 핸드폰 안 가져왔으니 나중에 하자고 했다. 그러자고 했다.

이튿날 영어로 쓰인 에세이를 읽어보았다. 암 4기라고 했다. 마지막 검사를 기다리면서 쓴 글이었다. 좌절과 고통 속일 텐데 남편과 아들들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이 절절이 묻어나는 그녀다운 글. 자존심에 부모에게도 한국의 어느 친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오직 나에게 알린 것도 모르고 내가 시기를 놓친 것이었다.  

돌아와 전화를 했지만 안 되었다. 메일도 읽지 않는다. 그녀는 말이 없다. 남편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녀에게 메일을 보내라고만 할 뿐이다.

......

 

여러 해 전, 가까운 친척이 폐암 진단을 받았다.

수 차례의 화학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받았지만 암세포는 줄지 않았다.

그녀는 머리털이 다 빠지고 걸음도 몸짓도 로보트처럼 되었다. 컵을 손에 쥐지 못했고 계단도 잘 오르내리지 못했다. 먹는 약은 많았다. 결국 더이상의 화학치료를 거부했다. 그래도 아직 젊고 자녀가 어린데 삶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온 가족이 붙잡고 말렸다.

그래서 그녀와 함께 암치료로 미국 1위라는 텍사스주 휴스턴의 M.D.앤더슨인가 하는 병원에 갔다.

기적처럼 그녀의 암은 화학치료가 필요없는, 호르몬치료를 해야하는, 그리고 그것도 그냥 가지고 살아도 장수할 수 있는 그런 암이라고 했다. 의사는 그게 밝혀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밝혀낸 암은 전체 암이랄 수 있는 질병 중에 아주 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녀와 가족은 의사의 그런 진단을 믿지 않았다.

포기하고 돌아가라고 말할 수 없으니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지금의 국립암센터 이진수 원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첫인상은 '옥떨메'란 옛날의 별명이 어울릴 정도의 외모였다. 그러나 그분의 전문성과 인격의 깊이에 감탄했다. 이진수 박사님은 "지금 이순간에 가장 중요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셨다. 그녀가 사랑하는 아들, 딸, 가족이라고 했다. 그러니 "그럼, 돌아가서 1분 1초라도 그이들과 함께 지내는 게 지금 해야할 일이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 나에게 생명을 주신 창조주에게 감사하고 선행을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또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나도 불치병을 앓고 있어요."

"?......"

"그건, 배고픔이란 병입니다."

"!......"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살아있는 내내 때가 되면 '밥'이란 약을 먹어야만 살 수 있는 '배고픔'이란 불치병을 주셨지요. 그래서 밥도 먹고 반찬도 먹어요. 당신은 거기에 약 몇 알을 반찬삼아 더 얹어 먹는다고 생각하면 되요."

 

그리고 그녀와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건강을 회복했고 선행을 행하며 사랑하던 가족과 잘 지내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행복했던 생활도 잠시, 미국에 날아와 눈물로 참회의 고백을 했던 그녀의 남편은 몇 년 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와의 이별을 대비해서 찍은 가족사진 속에 지금은 떠난 남편이 웃고 있다.

그리고 이런 기적같은 일을 있게 해 준 선배는 몇 년 후 군대간 아들을 사고로 잃었다. 아직도 아내가 힘들어한다고 했다.

삶이란 참 알 수 없다.

 

또 몇 일 전에는 집안 정리를 하다가 고등학교 때 단짝 친구들 6명이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했다. 그 중 하나가 일찌감치 뇌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아주 어린 자녀가 남았다.

책장에서 아끼는 시집의 주인공인 한 친구는 교직 초년병 시절 교육운동을 함께 했었는데 암으로 소원이던 시집 한 권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배반 볼록하고 뼈에 살가죽 뿐이어서 누워있기도 아파하는 그녀를 계속 쓰다듬어주어야 했던 늙은 엄마. 

천사같던 대학 동창인 친구는 쓸모없이 부어오던 암보험을 해약했다. 그리고 어렵게 사는 오빠를 도왔다던가? 몸이 피곤해서 일부러 설악산 등산까지 하며 체력을 다지려 했으나 다음 달에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사랑하는 선생님을 위해 수술비를 모금해온 제자들의 돈을 결코 받을 수 없다던 그 자존심. 그녀도 무균실에서 세상을 떠났다.

목소리가 꾀꼬리이던 착한 성가대 회원이 감기인 줄 알았는데 급성 백혈병으로 밝혀졌다. 많은 이들이 피를 기증하고 기도했으나 역시 천사같은 남편과 귀여운 아이들, 모시던 노 시모님과 장애를 가진 신우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가정법원에서 절도 등등의 범죄로 재판을 받기 전 상담한 아이. 일시쉼터에서 만난 그 아이와 엄마는 남편의 오랜 암투병과 사망으로 돈도 집도 다 잃고 여관에서 길로 쫓겨나게 되었고 덩달아 학교도 다닐 수 없던 아이는 동네에서 양아치들의 졸개가 되어있었다.

아...

 

암을 앓는 이들의 삶은 참으로 말할 수 없다. 가족의 고통도 그렇다.

그런데 그 암을 친구로 함께 한 이가 있다.

 

기업은행 사회공헌팀에서 일하면서 환우들을 돕고 멘토링 사업을 운영하는 친구로부터 선물로 받은 책.

<오방떡 소녀의 행복한 날들>, <암은 암, 청춘은 청춘>.

 

 

 

 

 

조수진은 과학고를 나와 서울대를 다니며 꿈을 키우던 시절 암진단을 받았다.

진단을 받았을 때의 느낌, 이웃들의 말, 의사의 말과 처치, 시간 보내기, 이웃 침대의 사람들, 그가 살아있으면서 겪는 일과 그때그때의 느낌들을 솔직하게 쓰고 만화로 그렸다. 많은 암 환우들이 공감의 댓글을 보냈다.

 

읽는 내내 웃다가 울다가를 거듭했다.

그래. 암은 암이고 삶은 삶이야!

그녀는 책에 나온 것 처럼 '청춘을 불사르고' 지난 해 3월에 세상을 떠났다.

 

지금 암을 앓는 이들, 그들을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들에게 권하고 싶다.

나도 내 가족이나 친구 중 또 누군가가 암을 앓을지 모른다.

오방떡소녀 조수진 덕분에 좀더 담담하게, 행복하게 암이란 병을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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