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과 이슈

인맥

샘연구소 2012. 4. 1. 12:49

나는 사람 좋아하고 돌아다니기 좋아하다보니 여기저기에 친구들이 많다.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동네친구, 교회친구, 학교친구, 일터친구, 여행친구, ... 그들이 지방이나 외국에 있기도 하고 또 새롭게 지방사람이나 외국인을 친구로 사귀게 되기도 해서 가히 내 친구들은 전국적, 전지구적이다.

 

그러다보니 이런 말도 듣는다.

"소장님은 인맥이 대단하셔서...어떻게 다 관리하세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인맥? 내 친구들은 인맥인가?

관리? 그럼 이 분도 나를 인맥으로 '관리'하시나?

 

난 그냥 좋으면 확 좋아하고 싫으면 그냥 '한 번 본 사람'이거나 다들 아는 어떤 사람일뿐 그가 내 '아는 사람'이나 친구가 되지는 않는다.

내 친구들은 만나자고 했다가 바빠서 안 되면 그냥 설명없이 이해되고 나든 그이든 억지로 맘 상할까봐 시간을 내지도 않는다. 아낌없이 주고 받아 고맙지만 요란하게 표현하거나 꼭 되갚으려 애쓰지 않는다. 사실 내가 친구들에게 받는 것만큼 하지 못해서 미안할 따름이다.

하긴 이렇게 친구들과 가끔 연락도 하고 만나기도 하니 그것이 '관리'라고 하면 관리가 되려나?

입에 올리기도 참 끔찍하다.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데 힘이 되는 것은 나의 많은 인맥이나 수많은 명함들이 아니라 이런 좋은 친구들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이런 친구를 갖게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을 '네트워크사업'이라고 한다. 교육공동체를 구축하여 운영하는 사업이라고 한다.

하지만 막상 보면 기관들끼리, 전문가나 실무자들끼리의 네트워크는 무성한데 그들끼리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 같은데 막상 당사자인 가난한 아이들과 가족간의 네트워크는 별로 강해지지도 풍성해지지도 않는 것 같다. 그들은 여전히 모래알처럼 흩어져있고 뭉쳐지지 않는다.

 

사회복지를 배울 때엔 인간과 환경체계간의 상호관계를 중시하고, '사회적 지지망'이 중요하다고 하고서도 막상 현장에서 일할 때에는 개인만을 보거나 전문기관, 전문가들의 네트워크인 '공식적 사회적 지지망'만을 생각하기가 쉽다.

나도 역시 엄마와 살다가 헤어지게 된 한 학생을 두고 쉼터나 그룹홈을 먼저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근처에 외할머니가 살고 계신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학생은 결국 외할머니댁으로 가게 되었는데 바로 내가 그런 실수를 한 것이었다.

 

그래서 빈곤한 사람들 돕는 일은 '돈'을 주거나 일자리를 주는 것뿐 아니라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을 함께 키울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배운 것 없고 가난한 사람이 로또에 당첨이 되더라도 삶의 질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에서 배울 점이 그것이다.

 

사회적 자본은 극단적으로 단순화시켜 말하면 결국 인맥이라고 할 수 있다. 신뢰, 협동이 가능한 그런 인간관계이고 공동체이다.

교육복지사업을 하고 햇수가 거듭되면서 일부 지역사회교육전문가들이 자칫 학교 안에 매몰되는 모습을 본다. 그러면 단순히 방과후 수업이나 특기적성 프로그램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교육복지사업을 통해 아이들의 현재와 미래의 삶의 질을 향상하려면 사회적 자본에도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정말 믿고 자기의 모든 것을 스스럼 없이 내보일 수 있는 친구와 이웃, 멍설임없이 부끄러워 하지 않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기게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문기관만이 아니라 가족, 대가족, 친구, 이웃인 비공식적 지지망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런 인맥, 인간관계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지금 가난하고 아마 앞으로도 가난할(아, 화나고 슬프다!)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회복력, '레질리언스'는 1년 정도 '누군가'가 변함없이 지지해주는 신뢰관계를 통해 만들어진다. 그 누군가는 아마 부모나 가족이면 가장 좋을 것이나 교사, 동아리 지도교사, 특기적성반 지도교사, 아이가 속한 학원이나 교회 등 지역사회의 어른, 학교 안이나 밖 기관의 상담사, 사회복지사, 멘토 등이 대신할 수 있다.

 

아이들의 '사회적 자본'이 더욱 힘세지고, 풍성해지는 교육복지사업이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척, 좋은 이웃,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 기쁨과 위로를 얻을 수 있는 친구와 이웃,

함석헌이 말한 '그 사람'이

하나라도 더 생기게 하는 사업이기를 바란다.

 

 

 

 

 

그 사람을 가졌는가

 

                                            - 함석헌

 

 

만리 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너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겨울동안 웃자라 늘어지고 새끼친 선인장들을 나누어 심고

잠깐 동안 해바라기를 시켜주었다.

종알종알 새콩새콩 저희들끼리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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