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

완득이

샘연구소 2011. 3. 9. 13:34

저자: 김려령(2007년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로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 <기억을 가져온 아이>로 미해송문학상 수상). <완득이>는 2007년 제1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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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놓고 오래도록 잡지 못했다. 하지만 '내곁을스쳐간...'이란 청소년소설과 함께 한 번도 손을 놓을 수 없게 한 책이다.


심하게 불행한 소년. 필리핀에서 시집 온 엄마는 난쟁이 아빠가 춤선생으로 사는 꼴을 볼 수 없어서 떠나고 아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멀리 떠돌던 아버지는 있으나 마나. 하여, 들짐승처럼 혼자 자란 완득이. 고등학교에서 괴짜 선생 ‘똥주’의 반 학생이 되면서 요상한 교회, 이주노동자들, 학교 친구들, 지적지체인 아빠의 춤 수제자 (의붓)삼촌, 거칠은 앞집아저씨, 갑자기 출현한 엄마, 모처럼 친구될 뻔한 공부잘 하는 중산층가정의 여자친구, 격투기 체육관과 관장님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몇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가난하고 찌질한 사람들끼리 서로 부대끼며 사는 모습이 아무런 채색없이 그대로 덤덤하게 드러난다. 저자는 독자에게 섣불리 불쾌해하거나 분노하거나 동정할 여지를 주지 않은 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써내려감으로써 완득이와 얽힌 이들의 삶은, 다닥다닥 붙은 달동네의 집 모양만큼이나 그냥 그런 아주 평범한 일상의 한 모습일 뿐이다.

 

가난하고 가정은 깨지고 불행과 실망 뿐일 수 있지만 완득이는 잡초처럼 그렇게 산다. 동정할 것도 없다. 격려할 것도 없고 가르칠 필요도 없다. 그래서 똥주라는 담임은 그렇게 행동하나보다. 완득이로부터 존경이나 감사조차 차단한 똥주가 대단하게 보인다. 완득이는 똥주가 부자 아버지를 둔 덕에 가짜 십자가를 내걸고 외국인노동자 쉼터도 하고 막판에는 아버지를 위해 춤교습소까지 열어준다고 공격하지만 나는 그 똥주가 대단하게 보인다.

 

이 땅의 완득이들과 그 아버지, 어머니를 위해 학교가 교사가, 사회복지사가 알아야 할 것, 해야 할 것,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많은 사회복지사들은 섣불리 완득이를 '진단'하고 '평가'하고 '상담'과 '교육' , '사례관리 서비스' 등 '선의의 개입'을 하려고 나설 것이다. 과연 그것은 옳은 일일까? 묻게 만든다. 그래야만 할까? 아니, 그래도 되는 걸까? 과연 그렇게 함으로써 완득이'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요즘은 점점 상담이나 사회사업에서 말하는 'intervention'이니 'treatment'니 하는 거들먹대는 전문적 용어들이 회의스러워진다. 잠시 나를 내려놓고 겸허하게 지켜보며 좀더 오래 그들과 함께 그들 곁에 있으려는 노력이 더 소중하지 않을까?

 

<나에게 콱 꽂힌 구절>

"정황상 나는 가출을 해야 했다. 출생의 비밀을 알았습니다. 잠시 혼자 있고 싶어 떠납니다, 라고 쓴 쪽지 하나 남겨놓고 떠나야 했다.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사람들이 먼저 떠나버렸다. 잘못하면 가출하고 돌아와 내가 쓴 쪽지를 내가 읽게 될 확률이 높았다. 어떻게 된 집이 가출마저 원천 봉쇄해놓았는지. 돌아다니다 돌아다니다 혼자 있고 싶어서 온 곳이 결국 집이었다(43)."

 

그렇게 아이들은 점차 혼자가 되어간다. 자고 일어나니 빈 베겟머리에 쪽지 하나 달랑 남기고 혼자였던 엄마는 돈을 벌러 나갔다는 아이. 철저하게 처절하게. 난 너무 어려서 이미 그렇게 어른처럼 자립 아닌 자립을 해버린 아이들을 많이 보았다. 또 마지못해 그렇게 자식을 떠났다가 스스로 괴로움에 못 이겨 정신병원 문턱을 닳도록 드나들며 우울증 약을 먹고 있는 엄마도 보았다. 모두가 혼자인 이들에게 가족은 무엇인가. 그럼에도 아이들은 자기를 때리고 굶기고 버린 엄마와 아빠를 '못 끊는다.'  

 

"아버지와 내가 가지고 있던 열등감. 이 열등감이 아버지를 키웠을 테고 이제 나도 키울 것이다. 열등감 이 녀석, 은근히 사람 노력하게 만든다. "

 

약간의 스트레스는 삶의 활력소이자 원동력이 된다건다. 아버지를 키웠고 완득이도 키워줄 그 열등감. 이들을 어지간히 억누르고 괴롭히겠지만 그래서, 그것을 극복했을 때 쑥쑥 자라고 안으로 점점 단단해질 것이다. 열등감을 없애려고 할 것이 아니라 열등감을 싸안고 싸우고 발버둥치고 못내 감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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