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과 이슈

잔인한 4월

샘연구소 2012. 4. 24. 00:01

영국의 시인 T.S. Eliot이 쓴 "The Waste Land; 황무지"(1922)는 1부 'The Burial of the Dead'의 시작부분으로 유명하다.

"4월은 잔인한 달...'로 시작되는 바로 그 부분이다.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이하 생략)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자라게 하고

추억에 욕망을 뒤섞으며

잠든 뿌리들을 봄비로 깨우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지.

눈덮인 대지는 모든 것을 잊게 해주었고

마른 구근 (球根)에 목숨만 유지하면 되었는데... (이하 생략)

(번역 박경현)

 

 

우리에게도 4월은 잔인하기만 하다.

 

봄이 되면 유난히 죽음의 소식들이 신문에 자주 보도되기 때문이다.

올해도 다르지 않다.

주변에서 환절기를 맞은 환자, 노인들이 쓰러지거나 숨을 놓았다.

나는 재작년 봄에 운명한 학교사회복지사 동지의 전화번호를 핸드폰에서 지워야할지, 이메일 주소를 삭제해야 할지, 아직도 망설인다.

 

 

무겁고 어두운 흙을 뚫고 자라는 여린 싹들도 대단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여린 생명들도 많다.

학교폭력으로 괴로워하던 아이들의 죽음 소식이 연이어 보도되는 가운데 카이스트 4학년생이 4월 17일 자살했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도 지난 3월 30일에 죽음을 택했다. 보도되지 않은 죽음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정말 4월은 잔인한 달이다.

 

특히 청소년들은 이 시기가 민감하고 위험한 시기이다.

안그래도 봄철 환절기의 날씨는 호르몬을 움직여서 우울감을 증가하게 한다.

게다가 10대 사춘기는 감정조절 기능보다 충동성과 우울감이 높아서 생물학적으로 50대와 함께 자살율이 높은 시기이다.

생활환경을 보면 새학년, 새친구, 새담임으로 학업 및 학교생활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 중간고사 무렵에 극에 달한다.

또 새로운 관계 속에서 권력구조를 재확인하려는 아이들과 괴롭힘의 표적이 되는 아이들 간의 갈등도 더이상 참기 힘든 시기가 된다.

 

그런데 학교폭력에 대한 교과부의 대응은 참 허접해보인다.

설문조사는 말하고 싶지도 않다. 우리집에도 고교 졸업반 아이가 있어서 편지를 받았다. 기가 막혔다!!!! 허접의 극치다.

게다가 대책이라는 것들이 마치 폭력적인 아이들만 젓가락으로 밥에서 콩 골라내듯 뽑아서 된통 벌을 주고 그렇게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면 폭력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하는 듯하다. 이것은 폭력에 대한 또 다른 폭력이다! 게다가 정작 아이들은 별로 위축되지도, 위안받지도 않는다.

학교는 온갖 학교폭력 대책과 지시들로 더 부산해졌다. 그러니 교사도 아이들도 불안하고 번잡하다. 폭력에 취약해지는 것이다.

현장에서 보면 폭력은 아이들의 생활 깊숙이 파고들어있으며 일부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징계와 공포분위기 조성으로 변화가 없지는 않을 것이나 그리 기대할만하지도 않고 또 그 비교육적 효과가 우려된다.

 

< 학생들이 응답한 학교폭력 피해장소 >

 

< 학생들이 응답한 학교폭력 피해유형 >

한겨레신문 2012. 4. 20일자 4면 기사 자료를 박경현이 도표로 재구성.

 

 

설문조사를 해보면 아이들의 폭력 경험장소는 바로 학교의 교실이나 화장실이 많다. 수업시간이나 쉬는 시간, 즉 일상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동안이라면 언제든 폭력이 일어난다. 그러나 아이들이 함구하면 교사들은 잘 모른다. 교사들이 교무실로 들어가 문을 닫고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폭력은 늘 일어나고 있는데도 말이다.

폭력경험 유형 중에는 단연 언어폭력이 많으며 최근에는 핸드폰이나 인터넷을 이용한 정서적 폭력이 많은데 이것은 정말로 수습이 어렵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우선,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요란스럽게 대책을 마련한답시고 새로운 특별사업을 지시하는 방식부터 없어져야 한다.

그런 걸 요구하는 학부모들과 시민단체들도 자중해야 한다. 맞장구치고 법석을 떠는 언론도 자제해야 한다.

과학적 기반에서 안정적으로 예방과 치료 시스템이 구축되어 돌아가게 해야한다.

 

가장 근본적인 대안은 일상 속의 폭력을 낮추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비폭력, 즉, 평화로서 해결하는 것이다. 

폭력예방이니, 폭력처벌이니 하는 말부터 바뀌어야 한다.

대신 폭력을 대체할 비폭력, 평화, 존중, 사랑, 배려, 이해, 공감, 인내, 공생, 협력... 등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폭력이란 무엇인지 가르치고 폭력에 대처하는 법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평화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 체험하게 하고,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고 나누는지, 감정을 어떻게 읽고 해석하고 평화롭게 표현할지, 또 갈등이나 분쟁을 싸움이나 징계가 아닌 설명과 경청, 인내, 사과와 용서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경험하게 해야 한다.

그런 컨텐츠를 개발하고 보급해야 한다.

 

그리고 학교안에서 아이들과 어른들, 즉 학생과 교사 사이의 경계를 그을 곳은 확실히 긋되 터놓을 곳은 터놓아서 물리적으로도 통해야 한다.

나는 교사시절 쉬는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되도록 교실에서 지내려고 애썼다. 폭력을 비롯해 있어선 안 될 일들을 예방하고 또 아이들을 관찰하고 가까이 사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요즘 교사들은 도무지 시간이 없다고 한다. 정말 그런지 아니면 엄살인지 모르겠다. 

내가 학교사회복지사 때, 생활지도부장이 흡연, 폭력 등으로 소위 '찍힌' 아이들이 안 보인다고 학교를 뒤지다가 결국 학교사회복지실에서 발견한 적이 있다. 아이들은 점심시간 으슥한 학교구석 대신 학교사회복지실에서 놀았다.

또 경기도의 한 학교사회복지사는 어머니 자원봉사대를 구성해서 점심시간에 학교 구석구석에서 아이들과 섞여 지내도록 한다. '스쿨폴리스'보다 얼마나 인간적이고 교육적인가.

 

이 모든 것에 앞서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와 학생간의 직접적인 의사소통의 방법을 살피는 일이다.

마치 아이들이 감정도 피도 없는 공부기계인양 하는 수업과 학급운영은 스트레스를 높여서 공격성과 우울감을 증가시키고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을 저하시킨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만나는 부모와 교사, 가장 가까운 어른들이 학교폭력, 아니 청소년폭력의 주범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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