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과 이슈

넌 꿈이 뭐니?

샘연구소 2012. 4. 30. 23:27

아이들에게 꿈을 가지라는 협박이 심하다.

 

#1.

어느 청년의 취업기이다. 면접장에서 고위 간부가 물었단다.

"꿈이 뭐에요?"

그 청년. 속으로 되묻고 싶었단다.

"당신의 청년시절, 입사시절 꿈은 뭐였어요? 당신은 꿈 때문에 이 회사에 들어와서 지금껏 일하고 있나요?"라고.

이제 좀 그런 것 묻지 말아달라고. 그냥 어떻게 일하고 싶으냐고 하면 안 되냐고.

 

 

#2

어느 고등학교 아이들과 멘토링을 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해준 진로적성검사와 사고치고 갔던 위센터에서 해준 진로상담 등을 통해 나름의 진로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멘토들은 아이들의 꿈을 진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직면'을 시켰다.

그 꿈은 과연 얼마나 정직하고 현실적인지. 왜 그런 진로를 선택했고, 그래서 어쩌자는 건지. 

 

아이들은 황당해했다. 분노하기도 했다.

그동안 얼마나 얼렁뚱땅하게 밖으로부터 잘못 주입된 '꿈'을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냥 누가 물을 때 장래희망이 000라고만 말하면 저절로 그렇게 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꿈을 내려놓자 다른 생각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자신을 잘 모르고 있었다. 인생을 세상을 더 알아야 했다.

꿈과 유리된 현재의 생활을 스스로 통제할 내면의 힘과 주변정리가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 더 깊은 우정과 신뢰, 변함없는 격려와 지지를 쌓아야 했다. 그럴 어른이 곁에 필요했다. 멘토들은 기꺼이 그 역할을 감당했다.

 

 

#3.

그녀 자신의 표현으로 '너무 먼 길을 돌아온' 어느 20대 초반의 여성과 이야기했다.

 

그: 검정고시 치르려구요.

나: 오랫동안 공부 안 해서 힘들텐데...

그: 맞아요. 글자만 보면 머릿속이 하얗게 돼요. 그래도 해야죠. 이제는 ...

나: 뭐 하고 싶은데?

그: 그냥 오래 쓸 수 있는 기술 하나 배워서 적당히 먹고 살다가 50쯤에 죽고 싶어요.

나: 그런 기술이 있을까?

그: 지금 배우는 바리스타과정부터 열심히 하려고 해요. 어렸을 땐 춤도 잘 추고 그랬는데... 히히...

 

어릴 적 그 아이는 꿈을 포기 한 게 아니라 자신을 포기한 거다. 왜냐고? 가족도 포기하고 선생님들도 포기했으니까.

흔들리는 가족 속에서 누군가 잡아주기를 바랬고 그래서 더 유난스럽게 몸부림을 치며 신호를 보냈지만 가족과 교사들은 그런 아이의 속마음도 모른 채 아이를 더 억압하거나 외면하고 아니면 두려워하면서 (아이가 붙잡고 싶은 엄마나 아빠, 선생님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보내려고만 했다.

 

아이는 각자의 그림대로 아이를 몰아가려던 '꿈'을 강요하는 어른들을 떠나,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받아들여서 친구가 되어준 '노는 아이들'과 실컷 어울렸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중퇴하면서 험하고 먼 길을 돌아서 지금까지 왔다.  

과거의 그녀에게 그리고 지금 그녀에게 '진로상담'이란 어떻게 되어야 할까.

 

 

#4.

오래 전 돌던 우스개소리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이 성공하는데 필요한 것 7가지는? 쌍 기역(ㄲ)으로 시작하는 한 단어로 나열해보시오.

 

꾀(노력해서 얻는 지식 또는 지혜),

끼(타고난 재주, 천성),

꿈(희망, 비전, 목표)

끈(인맥, '빽'),

깡(의지력, 기상),

꼴(외모),

깔(당시 아이들 은어로 이성친구-배우자의 외조)

 

우스개소리지만 전혀 헛된 말은 아니다.

 

 

#5.

나는 어릴 적 음악인이나 건축가가 되고 싶었다.

가정형편 때문에 음악을 할 수 없었고, 여자라서 노가다판은 금지당했다.

또 기자가 되고 싶었지만 부모님 생각에 여자에겐 거친 일이었을 뿐 아니라 연애나 결혼상대의 직업으로도 금지당했다.

외교관이 되고 싶었지만 사회계열은 남자나 재수생들에 비해 현역의 여학생이 도전하기에 위험하다고 금지되었다.

그래서 결국 3학년 담임선생님과 부모의 합작으로 내 희망과는 전혀 달리 여자에게 가장 좋다는 교사의 길로 가게 되었다.

 

사범대생이 된 것을 반항하려고 학교밖으로 빙빙 돌면서 야학하고, 농촌봉사하고, 교회주일학교 선생했는데 그러면서 내가 알지 못했던 내 능력을 발견하고 교직이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장이 되겠다 싶어졌다. 

그리고 교사로 일하면서 정말 즐거웠다. 신났다. 잘 했다.

그런데 공부 못 하고 문제아 취급당하고 어려운 가정형편의 아이들이 예뻐서 그런 애들과 어울리고(!) 거두다보니 다시 사회복지를 하고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다.

 

나는 청소년 시절의 꿈을 하나도 이루지 못했다.

나는 실패자인가.

그런데도 내가 이 길에 만족하고 즐거워하며 끊임없이 스스로 더 나은 학교사회복지사, 교육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왜인가.

지금의 나를 '진로지도'한 것은 무엇일까.

 

 

 

 

 

지인의 마당: 맘좋은 주인 덕에 다양한 들꽃과 들풀들이

멋드러진 정원수들 사이에서

각자의 모습으로 생명을 노래하고 있다.

진로지도도 그래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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