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과 이슈

체벌은 폭력이 아니다?

샘연구소 2012. 5. 2. 22:44

얼마전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예비교사들의 아동체벌에 대한 인식조사를 한 것이 <한겨레21> 906호(2012년 4월 16일 발행)에 발표되었다.

예상했지만 예비교사들 역시 체벌에 대한 인식이 후했다. 

아동학대는 반대하지만 교사의 체벌은 허용적인 인식과 행동의 괴리도 나타났다.

많은 이들이 어렸을 적 체벌을 경험했다.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이렇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예비교사의 아동인권인식 제고를 위한 정책제안서'를 교과부에 제출하면서 국내 교사양성과정 강의내용을 분석하고 예비교사들을 상대로 아동인권과 관련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조사에는 전국의 12개 교육대 학생 783명과 10개 사범대 학생 647명 등 총 1430명의 예비교사들이 응답했다. 

나는 그 내용을 보고 새롭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의 77.8%는 UN아동권리협약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거의 80%에 달하는 이들이 우리나라가 조인하고 실천하기로 약속한 아동의 권리에 대한 일종의 국제법을 모르고 있다. 하지만 응답자의 거의 대부분인 98.5%는 '아동에게도 권리가 있다'고 답했다. 아마 그들이 알고 있는 '아동의 권리'란 매우 추상적이거나 선언적인 의미에 그칠 것이다.

 

‘아동이 학대와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나’란 질문에 대해 거의 모든 예비교사들이 긍정적으로 답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체벌이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서는 35.4%가 심각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64.6%는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것은 체벌문제에 대해서 초등학교 교사가 될 교육대학생과 중고교 교사가 될 사범대행들간에 응답의 차이가 나타난 점이다.

‘수업 분위기를 바로잡기 위해 교사가 초등학생에게 신체를 이용해 체벌할 수 있는가’라는 문항에 교대생의 35.3%가 긍정하거나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한편 사범대생들은 44.1%가 긍정하거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조금 과장하면 절반정도는 교사가 학생을 손이나 발로 때릴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매를 이용한 체벌에는 더 관대했다.

교대생의 74%, 사범대생의 82.4%가 긍정하거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한겨레 21> 906호 75페이지 그림

 

 

 

 

그런데 이러한 체벌에 대한 관대한 인식의 이면에는 이들의 체벌경험도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20대 중반 이상이라면 아마 거의 모두가 학생 시절 체벌을 경험했을 것이다. 나 역시 그 중의 하나이다. 단체 기합이나 손바닥 체벌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며 남자라면 학교에서뿐 아니라 가정이나 군대에서도 더 심한 체벌을 수없이 경험했을 것이다.

 

설문조사 결과 체벌이 당연하다고 느꼈다는 예비교사도 있었지만 ‘반성보다 분노가 생겼다’는 등 모욕감과 뒤틀린 분노를 경험한 예비교사도 많았다. 나는 성별, 연령별, 지역별, 군경험별 차이도 궁금하다. 요즘 학생폭력사건이 빈발하는 것과 연결이 있지 않을까 궁금하다.

 

내가 학교사회복지사로 근무하던 2004년 시절에도 학생폭력이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연일 신문에 '일진과의 전쟁'이 선포되고 학교마다 폭력예방교육이 퍼졌다. 학교폭력예방및대책에관한법률이 선포되고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활기를 띠고 움직였다.

 

우리 학교에서도 폭력예방교육, 학생 지도자들을 '폭력예방지킴이'로 키우기 위한 교육, 캠페인, 포스터와 표어 공모 등을 비롯해서 공격성이 높은 학생들을 모아서 하는 집단 프로그램, 소극적이고 표현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모아서 하는 집단 프로그램, 학급의 공동체분위기를 강화하기 위한 학급프로그램, 개별상담과 폭력사건에 얽힌 학생/가족간 갈등중재프로그램 등을 실시했다.

 

그런데 그런 학생폭력을 퇴치하기 위해 뛰면서 그 이면에 어른들의 폭력성을 보았다.

때리는 아이들은 집이나 학교에서 어른들에게 맞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주변에 폭력이 늘 있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폭력에 대한 민감성을 키우고 폭력이란 무기를 거두어들이는 것은 어쩌면 전염병이 창궐하는 지역에 예방주사도 없이 내보내는 것처럼 걱정이 될 정도였다.

아이들에게 아주 간단한 설문조사를 해보았다.

1.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선생님에게 어떤 지도를 받아보았나요?(복수응답)

 

1) 훈계(말로 가르침)       2) 반성문       3) 벌청소      4) 체벌      5) 외부기관 봉사활동      6) 학부모 호출     7) 기타

 

 

2.  체벌을 받아본 적이 있다면 체벌 후 어떤 생각, 느낌이 들었나요?

 

 

3. 잘못을 지도하는 선생님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시절만 해도 체벌이 줄긴 했어도 여전히 주요한 '문제아 지도'방식이었다. 그런데 소위 '문제아'들인 아이들의 대다수가 체벌 이후 오히려 분노와 복수심만 불타올랐다고 대답했다.

더 유의할 점은 '무엇을 왜 잘못 했는지, 왜 매를 맞고 벌청소를 해야하는지 자세히 알아듣게 설명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아울러 '야단만 치지 말고 그럴 때 올바른 행동방식을 선생님이 제안해달라'면서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을 때가 더 많은데 그런 건 몰라주고 칭찬도 안 하며서 한 번 잘못하면 여러 선생님들이 단합해서 나를 온통 나쁜 점만 있는 아이로 몰아세운다.'고 했다. 

나는 설문조사결과를 간추려서 직원회의 때 선생님들에게 나눠드렸다.

 

만약 학교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이 있다면, 폭력가해학생, 폭력피해학생이라는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사회복지'적으로 보고 활동했으면 한다. 아이들의 폭력성은 대개 자신에 대한 방어수단이거나 결핍의 표현, SOS 신호로 발달한다.

주변의 폭력성을 낮추고, 평화적으로 바꾸는 일을 어렵다고 미루어선 안 된다. 그 가운데 교사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부터 폭력의 재생산이란 고리를 깨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 교사와 상담사, 경찰 모두가 아이들만을 표적으로 하고 득달하듯 몰아세우는데 그 속에서 사회복지사들은 의연하게 '환경체계'를 볼 수 있어야 하겠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제안서대로 예비교사들이 아동인권에 대해 미리 배우고 체벌대신 인권을 존중하는 지도방식을 배우고 고민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체벌과 같은 폭력적 교육방식을 안 하는 것뿐 아니라 평화적인 교육방식, 사랑과 이해, 존중과 인내, 용서와 희망의 교육방식을 채택하는 가치관과 내면의 힘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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