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방문한 몇몇 교육청의 교육복지사업 담당 장학사님들이나 사업학교 교장 선생님들 중에서 간간이 교육복지사업에 대해 큰 거부감을 가진 분들을 뵈었다. 그분들 말씀은 이랬다.
무상급식을 일제히 하기보다 가난한 아이들만 골라서 지원하고 살만한 집은 내게 하는 게 낫지 않나.
그 돈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데.
아이들이 고마운 줄도 모르고 부모도 자꾸 손말 벌리고 자식 교육에 관심이 없다.
아이들이 참여하지도 않는데 자꾸 이런 저런 사업비가 내려와서 교사만 힘들다.
복지사업은 지자체나 복지부 소관 기관에서 해야 한다.
어쨌든 난 모르니 프로젝트 조정자가 알아서 혼자 하면 된다.(어차피 1~2년 후면 자리를 옮길 테니까)
가난해도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이런 식으로 아이들의 의존심을 키우고 낙인감만 조장한다.
....
교육복지사업의 의미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프로젝트조정자나 지역사회교육전문가, 교육복지사들은 이분들의 당당한 논리에 맞서서 무어라 말을 꺼내지 못한다.
이미 지금도 교육복지사업은 일정 수준의 빈곤(최하한선)을 증명할 수 있는 학생만 골라서 지원하는 사업이다.
그리고 그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빈곤'이란 기준으로, 그것도 학생 자신 탓이 아닌 '부모'의 빈곤을 기준으로 '골라내서' 지원하는 사업이다.
그래서 문제가 많다.
표적만을 집중적으로 공략한다는 질병모델이거나 선별적 복지프로그램은 효과성과 효율성이 높다고 하여 소위 자유주의 복지론자들이 주장하지만 현장에서는 그다지 효과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무엇보다도 비인권적이다. 인간의 '자존심'을 구기게 만든다!
지금도 이미 골라내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며 신경을 써야하는지. 그런 것들이 다 행정비용이다.
그런데도 더 어떻게 골라내야할까?
복지사업이니 학교밖에서만 할 수 있을까? 교육복지의 내용 중 교육과 관련없는 것이 있나.
게다가 아이들은 95%정도가 다 취학하고 있고 학교에서 낮시간의 대부분을 보내고 학교에 모든 인적사항이 있는데 누가 아이들을 더 잘 알 수 있으며 아이들을 매일 만나며 아이들에게 알맞은 서비스와 프로그램을 찾아줄 수 있을까.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교육복지는 지역사회에서 한다면 학교는 아이들이 시험점수만 받고 졸업장만 발행하는 허깨비인가.
아이들이 애써 준비하고 아까운 세금 투자해서 만든 프로그램에 참여하지도 않고 정작 하고 나서도 고마운 줄도 모른다고 한다.
아이들이 고마워 하지 않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고마워하는 아이들도 많다. 입으로 '고맙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표정이 밝아지고 평화롭고 행복해지고 건강해지는 것은 수백번 말과 글로 '고맙습니다'라고 궁상맞게 소감문이나 감사편지를 쓰지 않아도 훨씬 웅변적이다.
하지만 물론 고마워하지 않는 아이들도 많다. 왜냐하면 본인이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빨 없는 사람에게 갈비를 주고 먹으래봤자 고마워할 리가 없고, 소화력이 부족하거나 이미 배부른 사람에게 계속 다른 영양식을 주어봤자 그또한 고마워할 리가 없다. 우리는 그런 것을 구분할만큼 세심하게 배려했나.
만약에 내 자식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이를 세심히 살피고, 몇 년의 흐름 속에서 계획을 세우고 묻고 설득해서 캠프도 보내고, 책도 사주고, 문화행사도 데리고 나간다. 그리고 다녀와서 '엄마에게 고맙다고 해라.'며 감사편지나 소감문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냥 마음으로 느끼고 안다.
하지만 교사들이 바쁜 건 사실이다. 나도 속이 탄다.
어느 부장 선생님은 방과후학교사업, 교육복지우선사업, 자기주도학습사업, 다문화학생지원사업... 과 같은 '자투리' 지원사업들을 다 맡아서 하시느라 연초에 늘 수면부족, 초과근무시다. 주말도 휴일도 반납하고 지역사회교육전문가와 함께 열심히 뛰신다. 존경스럽다.
사실 나는 교사들이 다른 일로 바쁜 건 싫지만 교육복지는 모든 교사가 제대로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교육복지의 기초는 담임에게서 출발한다.
빈부를 막론하고 맡은 아이들을 하나하나 살피고 관찰하는 일, 아이의 장점과 희망, 아픔과 노력을 알고 격려하고 기대하는 일, 또 아이와 교사간에 서로 믿고 좋아하는 관계를 만드는 일은 교육복지의 출발이다.
그러기 위해서 연초에 개별상담도 하고, 역동을 일으키고 친밀감을 조성하기 위해 집단프로그램도 하고 몇몇은 가정방문도 하고, 부모님들도 모시고 아이들과 주말에 운동경기도 하고... 그러는 데 교육복지 예산의 많은 부분을 썼으면 좋겠다.
교육복지가 아이들이 행복하기 위한 사업이라면 교사와 내 교실, 본 수업을 제치고 왜 다른 지도자에게 다른 교실에서, 그리고 본 수업은 포기하고 보충수업에서만 행복을 보충하려고 하는가.
그래서 선생님들이 좀 덜 바빠졌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교육복지는 마치 사회적으로 손가락질 받을만한 아니면 동정을 받을만한 특별한 '그들'을 위한 시혜적 사업이 아니다. 복지는 민주주의로의 과정이다. 이 길을 거치지 않고는 진정한 민주주의, 복지국가로 갈 수 없다.
지금의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은 일정수준 이상 너무나 가난한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복지가 빈곤한 아이들에게만 필요하다는 발상은 복지의 가장 낮은 단계이다.
부모의 빈곤이나 장애, 만성질환 등과 같이 아이가 책임질 수 없는 특성은 구별의 기준이 되지 않아야 한다.
그런 것은 부유세와 연동한 교육세 같은 것으로 부모의 소득에 따라 교육세가 매겨지고 학교에서는 고르게 무상으로 실시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선생님과 상담자, 사회복지사, 여러 지도자들은 좋은 프로그램, 아이들과의 좋은 관계만은 연구하고 실천하는데 힘을 쏟았으면 한다.
아이들은 스스로가 책임질만한 학업능력, 소질, 취미, 생활태도,... 같은 것으로 빈부구분없이 상담이나 보충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면 한다. 이런 것들은 의무교육이라면 다 무상으로 해야할 것이다.
이제 교육복지사업 10년. 그래도 교육불평등은 여전히 더 악화되고 있다. 이제는 아이만을 보지 말고 각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잘 마련할지, 그 아이를 위해서 학교와 가정이 어떻게 달라져야할지를 더 고민하고 노력해야할 때이다.
그러면서 부유한 집 아이들이 가난한 아이들과 함께 어깨동무하고, 가난한 아이들이 당당하게 부유한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다면 그게 더 나은 복지사회로의 길이 아닐까.
오늘 방문한 어느 중학교 교장선생님은 전국에서 학생들을 가장 많이 만나는 교장이 되고 싶다고 하셨다.
넓지 않은(!) 교장실 한쪽 벽에는 전교생의 이름과 작은 얼굴사진이 빼곡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교장선생님은 아이들을 적어도 일년에 두 번씩 만나려고 애쓰고 계셨다.
심지어 지역사회교육전문가와 가정방문도 함께 가보셨다고 한다.
그러고 나니 우리학교 학생들의 생활형편이 더 잘 이해가 되고 사랑하는 마음이 솟는다고 하신다.
집에 자기 공부방 없이 사는 아이들을 배려해 학교에 방과후 공부방을 정말 정감가는 '내 책상'으로 꾸며주었다고 한다.
얼마나 멋진가!
그 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가난해도, 교육복지사업을 하건 말건, 아마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햇살이 눈부시다.
길 한켠에 아무렇게나 무리지어 피는
민들레가 예쁘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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