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과 이슈

ADHD 학생 사례관리?

샘연구소 2012. 5. 29. 09:54

내가 만났던 몇몇 심하게 주의산만하고 규칙위반을 밥먹듯 하고 교사의 생활지도가 잘 안 되는 중학교 학생 사례들이다.

 

1. 여

담임선생님이 아이와 차분히 얘기를 했다. 집에 초대해서 선생님의 어머니가 직접 차려주신 근사한 저녁밥도 먹었다.

복지실에서 만든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아저씨들과 사진을 찍고 영화를 만들었다.

산만해지고 날카롭고 거칠어지다보니 '노는' 언니와 친구들이 늘 아이를 불러냈다. 아이는 마음이 흔들렸지만 좋은 담임선생님에게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았다. 격주로 하는 멘토와의 신기한 프로그램도 재미있고 은근 설레는 기다림이 있었다.

담임교사와 사회복지사, 생활지도부교사가 불러내는 아이들을 적당히 차단하고 소녀를 보호했다.

여름에 복지실에서 기획한 부적응학생들을 위한 방학 숲속 캠프도 데리고 갔다. 노는 언니들이 훈수를 두어주고 많이 보듬어주었다. 자기가 괴롭히거나 찌질하게 보았던 아이들과 공동체놀이를 하며 마음의 벽을 텄다. 좋은 친구들을 갖게 되었다.

 

알고보니 아이는 1년 전 부모님이 이혼한 후 아버지, 고교생인 언니와 살고 있는데 언니는 알바를 하며 거의 밖에서 자고 아버지는 알콜중독이었다. 중학교에 올라와 사춘기와 부모님의 이혼이란 큰 사건이 맞부닥친 것이었다.

한 번은 밤 11시에 아버지에게 맞고 옷을 벗기운 채 쫓겨나서 담임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단다.

선생님이 그런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아이는 성적이 점점 오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되었을지는 물으나 마나.

 

2. 남

환절기만 되면 가출을 해서 3-4일만에 부모님 손에 이끌려 돌아온다. 멀리 가지는 않는 것이다. 다만 집에 있는 걸 참을 수 없었다.

교실에선 비교적 조용했다. 원래 성격도 좀 내향적이다. 외모도 좀 작은 편이다. 큰 아이들이 학교에서 툭툭 치고 괴롭힌다. 속으로 참는다. 선생님 같은 어른들 앞에선 주눅이 들어서 꼼짝도 않고 지낸다. 눈에 안 띄는 조용한 학생이다.

집중하면 어려운 문제도 잘 해결한다. 공부도 잘 하는 편이다.

하지만 속에선 해소되지 않은 욕망과 에너지가 마구 꿈틀거리고 있다.

편한 장소, 편한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분노와 불안, 우울이 폭발했다. 복지실 같은 곳애서, 나와 같이 있을 때면.

쉬는시간마다 복지실에 오는 아이, 점심시간에도 밥을 다 안 먹고 달려내려오는 아이를 시간을 두고 계속 관찰했다.

퍼줄게임 같은 걸 순식간에 풀어낸다. 손놀림이 기가 막히다.

가끔은 물건을 부서뜨린다. 극도의 불안과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는 게 보인다. 다 죽여버리고 싶다고 했다.

 

정신보건센터에 데리고 갔다. 검사결과 ADHD와 우울증이 겹쳤다고 했다. 

아이는 가는 내내, 기다리는 내내 종이를 여러장 찢고, 밟고, 심지어 센터에서는 물컵을 깨뜨려서 손을 베었다.

엄마와 병원에 가서 정식 진단을 받고 약을 받아와서 먹었다.

복지실에서는 방과후 친한 친구들과 동아리를 만들어 운동 프로그램을 하게 해주었다. 

아이들과 수련회에 갔는데 아이가 안 왔다. 또 가출했다고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담임이 아닌 나에게. 담임이 화가 났다. 나를 미워했다.

생활지도부장과 의논하여 아이가 똘똘하고 좀 자기를 드러내고 남을 지휘하고 싶은 권력욕이랄까 그런 게 있으니 '선도부'가 되도록 했다.

나는 엄마를 만나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정사와 엄마의 마음 속 우울이 터져나왔다. 학교가 떠나가라고 꺼이꺼이 우셨다. 그게 '상담'이었을까? 모르겠다. 엄마는 집에서 가장 약한 막내아들을 속죄양 삼아 남편에게 못 받은, 너무나 갖고 싶은, 그것을 변신시킨 아들에 대한 사랑, 기대, 분노, 원망을 다 쏟아붓고 있었다. 어린 13살의 아들이 저리 아프게 된 줄도 모르고...

아이는 1년 반 만에 놀랍게 변했다. 우등생이 되었다.

 

 

3. 남

아이는 공부시간엔 엎드려서 잔다. 쉬는 시간엔 화장실에 가서 담배를 피운다. 방과후엔 오토바이를 타고 놀러다닌다.

사고를 치고 경찰서에 가는 것도 한두번이 아닌데 그때마다 아버지가 재주껏 빼오신다.

생활지도부장이 무색하다.

아이들은 그 아이와 그 아이의 아버지가 우상이다. '우리도 그렇게 되어야지...'

모든 교사가 거의 손을 놓고 있었다. 사실 수업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 외엔 특별히 학교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으니 무시하면 되었다.

교실에 가서 관찰했다. 아이가 앉은 자리 주변엔 자기가 뱉은 침으로 둥글게 강이 나있었다.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왔다.

 

우연히 아이가 오토바이사고로 입원을 했다. 하루만에 깨어났다.

병원에 찾아갔다. 아버지가 계셨다. 소위 '어깨'시다.

난 깁스한 아이의 다리를 치며 말했다. "야, 이놈아 뭐 이리 일찍 깨어났냐! 좀더 혼나야되는데."

아이는 죽는 소리를 했다. 아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가 놀랐다. 나를 배웅해주시며 "식사나 술이라도..." 하신다. "좋지요!"했다.

며칠 뒤 집에 초대받고 수라상같은 밥상을 받았다.

너무 강한 아버지, 인형처럼 예쁜데 벙어리공주같이 보이는 엄마, 그리고 막무가내인 외동아들.

엄마, 아빠, 아이 모두 정신과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아보시라고 했다.

 

아버지도 엄마도 안 가셨다. 하지만 아이는 갔다. 약을 먹기 시작했다.

놀랍게 달라졌다. 칭찬했다. 깨끗해졌다. 얼굴이 피었다. 수업시간에 안 잔다.

 

 

4. 남

입학하고부터 사고다. 볼 때마다 어딘가에 상처가 있거나 부상중이다. 지저분하다.

친구와 사귀고 싶으면 집적대고 그러다가 맞아도 자기의 목적은 달성(관심끌기, 소통하기)했으니 행복해했다. -_-;;

초등학교때부터 근처 복지관에 다니던 아이다. 복지관 복지사와 만났다. 병원에서 ADHD 진단을 받았단다.

할머니와 여동생과 사는데 할머니가 아이를 못 당한다고 했다. 아이가 약을 먹는지, 병원을 가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복지관 복지사, 담임과 나, 셋이 학교복지실에 모였다.

복지관 복지사 - 아이와 병원 다녀오기, 할머니 찾아뵙고 가정 지원하기, 토요 프로그램 때 아이 만나기

담임 - 조종례시 아이 약 먹이기, 교실생활 관찰하고 칭찬해주기, '비밀수호천사' 정해서 아이 돌보기

학교 복지사 - 수업 아닌 시간 중 아이 관찰하고 세 사람 사이에 보조 맞추어주며 각자 할 일 코멘트해주기.

 

아이는 나를 알지도 못했다.

1년 후 몰라보게 깔끔하고 안정되었다.

 

 

5. 남

학교에 안 왔다.

겨우 만났다. 정신과 검진결과 ADHD와 우울증이란다.

아이가 하고 싶은 걸 물었다. 인터넷 서핑, 작은 물건 만들기. 친구들과 놀기. 동물 돌보기.

병원에 다녀왔다. 약을 안 먹는다. 부모도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는다. 휴!

 

일단 가정방문. 아빠는 알콜중독으로 누워 자거나 술 마시거나 폭력을 휘두르거나. 엄마는 지겨워서 따로 살림.

복지실 자원봉사자와 친구들이 번갈아가며 아침에 아이 집을 방문해서 학교로 데리고 왔다.

친한 친구 몇과 집에 가서 대청소를 했다. 으윽.. 그 곰팡이와 벌레들...

엄마와 몇 번 만났다. 며칠에 한 번이라도 집에 가서 아이 먹을 것도 해놓고 빨래 청소도 하기로 했다.

아이 출석일수가 위험했다. "일단 학교에만 와라. 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지내자."

그래서 복지실에 붙은 방에서 소설도 읽고, 청소도 하고, 십자수도 놓고, 실리콘 찰흙으로 모형도 만들었다.

조금씩 교실에 들어가는 날수를 늘려갔다. 방과후엔 친구들과 운동도 하게 했다.

방학 때는 친한 친구 한 명과 며칠 동안 동물병원에 다니면서 '견학'을 하게 했다.

 

복지관에 가정지원을 상의해보았다. 별 수가 없었다. 아이가 요리를 배우고 싶어했다. 복지관에 그 나이의 아이는 없었다.

결국 복지관은 아무 도움을 주지 못했다. 정신병원도 복지관도 전화 많이 하고 만나고 발품 팔았지만 그냥 그만큼이었다.

그래도 아이는 잘 지냈고, 학교에 잘 다녔고, 잘 졸업했다.

 

 

 

 

윗글에 세세히 적지 않은 소소한 만남, 대화, 방문, 고민, 실망, 인내, 방황, 협의, 격려, 고마운 손길들이 있었다.

 

위에서 말한 것들을 다 사례관리의 샘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상담사례인가?

이런 걸 사회복지사가, 교육복지사, 지역사회교육전문가가 하면 안 되나? 해야 되나? 위클래스 담당 전문상담사가 해야 되나?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 식으로 한다면 가능할까? 연간계획에 없던 집단프로그램(운동 동아리, 소규모 캠프 프로그램 같은 것)을 필요하니까 만들 수 있을까? 아이들의 필요가 연간계획에 따라 발생하는 것도 아닌데...

연계기관이 별로 없으니 실적으로 내놓기 부끄러운 것일까? 5번 사례는 연계실적으로 복지관, 정신보건센터, 정신과병원을 써넣어야 하나, 아님 실제 도움을 못 얻었으니 연계하지 않은 것으로 기록해야 하나?

담임교사들이 저만큼 제 몫을 하게 할 수 있을까?

아니, 담임이 저런 일을 다 하면 교육복지사, 지역사회교육전문가는 할 일이 없어질까봐 하지 못하게 해야할까?

지역사회교육전문가, 교육복지사들이 저렇게 교사, 부모들과 만나고 아이와 진솔하게 만날수 있을만큼 시간이 있을까?

 

 

 

 

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장님 코끼리 만지기' 노릇을 했는지 모른다.

잘 알지도 못하고, 잘 하지도 못했다.

내가 현장에서 일하던 시절만해도 '연계'할만한 기관이나 서비스가 별로 없었다.

그저 필요한만큼 복지관이나 병원을 이용했을 뿐이다.

고작해야 늘 만나는 학교 안의 교사들, 못난 부모들, 고만고만한 아이들,

그리고 복지실에 드나들던 고마운 사회복지 실습생과 자원봉사자들이 주로 협력한 '연계'기관이었다.

하지만 나름 온 신경을 집중해서 아이만을 생각했고 모두가 성심껏 자기 몫을 했다.

아이들은 대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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