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겨레신문에서 <인권이 최고의 아동복지다>라는 제목으로 연재하고 있는 기획시리즈 1탄, "대한민국 10대의 삶'에서 게제된 내용 중 일부이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0867.html)
우리 사회의 꽃들이 뚝뚝 부러지고 있다. 아파트 옥상, 교실, 거리에서 끔찍한 비명이 들려온다. 어른들의 비뚤어진 욕망에 목숨을 잃거나 성적인 폭력에 희생당한 아이들 얘기는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충분한 보살핌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드러낸다. 모든 아이들을 ‘좋은 대학’ 입학이라는 벼랑길 경쟁에 내몰아 놓고, 나 몰라라 하는 어른 모두가 공범이다. 헌법이 보장한 행복추구권을 유보당한 아이들의 삶과 인권 보장 방안 등을 10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그 첫번째로 서울 강북지역 ㄴ중학교 2학년 ㅈ양의 하소연을 들어봤다. ㅈ양은 과도한 ‘학습노동’, 어른들의 일상적인 무시와 차별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평범한 중산층 부모와 사는 ㅈ양의 성적은 반에서 중위권이다. 인터뷰 내용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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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들께!
안녕하세요. 저는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입니다.
지금 이맘때부터 ‘고3 마인드’를 가져야만 한다고 외쳐대는 수많은 인강(인터넷 강의) 강사들과 선생님들 사이에서 저희들은 살아가고 있지요.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들 속에서 삶의 의미를 상실한 저희들의 모습은 서로 보기에도 안쓰럽기만 합니다. 이런 고등학교의 실태를 부모님들께 소개하고자 해요.
기숙형인 저희 학교에는 방학이 없습니다. 뭐, 저희 학교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기숙사 학교들도 방학이 거의 없습니다. ‘보충수업’이라는 명목 하나로 저희를 얽매어 놓죠. 보충수업 신청을 거부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으실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보충수업 참가 신청서에는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없습니다. 방학임에도 정규 수업처럼 진행되고, 빠지려고 해도 선생님들이 어디를 왜 가느냐고 캐물어, 저희의 생활을 낱낱이 보고해야 하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기숙사에서 살아가다 보니 학교 일과를 끝내는 시간이 기숙사에 들어가는 시간입니다. 학기 중에 야자(야간자율학습)가 끝나는 시간은 밤 12시30분, 기상시간은 아침 6시입니다. 오늘 학교에 가면 그 다음날 기숙사에 들어와서 몇 시간 뒤에 다시 학교를 가는 구조입니다. 방학 때도 야자는 멈추지 않죠. 방학이라고 줄어든 야자 시간이 밤 12시까지. 여전히 기숙사에 들어가면 그 다음날이 되어 있죠.
애들끼리 모이면 “고등학교 생활이 삭막하다”는 얘기뿐입니다. 우리는 모두 고등학교라는 공간을 친구, 선생님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자신의 꿈에 대해 고민하고, 꿈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기반을 다지는 곳으로 인식하고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365일 내내 언·수·외(언어·수리·외국어) 문제집을 풀며 살아가고 있는 게 현실이죠.
저마다 다양한 방식의 삶을 고민해보고 꿈꿀 수 있는 열린 마음과 머리를 가져야 할 시기이지만, 교실 뒤에 붙어 있는 장래 희망은 누가 하나로 통일하라고 명령이나 한 듯, 모두 ‘의사’ ‘검사’라고 쓰여 있는 현실이 슬플 따름입니다. 이런 상황을 단지 저희 탓이라고 하지는 말아주세요. 저희들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되어가고 있는 거니까요. 수능이라는 잣대 하나로 장래가 결정된다고 믿는 대다수 학생들의 머릿속에 박힌 이러한 사고들이 저희가 만들어낸 결과일까요?
우리 사회에는 비정규직과 감정노동자 등 많은 약자가 존재하는데, 학생이라는 신분도 하나의 사회적 약자라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장래 희망을 말할 때도 어른들이 정해주는 걸로 결정되어 버리고, 수행평가라는 문서 하나 때문에 선생님들에게 대꾸도 하지 못하죠. 학생으로서의 시간, 특히 고등학교에서의 3년은 벙어리로 살아가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머니 아버지들께 고합니다. 이런 현실은 단지 저와 저희 학교에만 국한되는 게 아닙니다. 학교에 늦게까지 남지 않는 학생들은 학원 또는 다른 곳에서 이런 생활을 하고 있겠지요. 이유는 단 하나, 학생이니까요.
저의 얘기를 단지 불만의 표출이라고 여기진 말아주세요. 제가 말씀드린 학생들의 삶은 우리나라의 높은 청소년 자살률과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만이라도 저희의 다양성을 고려해주시고, 저희들을 다독여주세요. 그리고 믿어주세요. 어린 시절부터 겪어온 경쟁이 저희를 지칠 대로 지치게 만드네요.
어른들에게 계속 엄마노릇, 아빠노릇, 직원노릇, 교사노릇 잘 하는지 매달, 매주, 매년 시험보고 비교하고 평가하고 다그치면서 살라고 하면 좋아할까? 행복할까? 살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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