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

계층이동의 사다리

샘연구소 2012. 10. 21. 01:24

교육사회학에 기반한 책 중에 정말로 쓸모있는 책이다. 실천가들에게 쓸모가 있다.

 

 

 

 

계층이동의 사다리

(빈곤층에서 부유층까지 숨겨진 계층의 법칙)

루비 페인 지음, 김우열 옮김, 황금사자 펴냄(2011.05.30 발간)

 

 

 

미국의 빈곤문제를 기반으로 분석하고 그에 대해 교육현장이 할 일을 제안했다.

한국에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그래도 참고할 부분, 통찰을 주는 내용이 참 많다.

 

약 40년 전인가? '빈곤문화' 또는 '하류문화'라는 사회학계의 연구가 나와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빈곤층만의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계층분리와 갈등, 낙인감을 유발한다고 하여 오히려 터부시되었다. 하지만 있는 것은 있는 것이다.

이책에서는 말을 바꾸어 '불문율'이라고 부른다. 하류층에 한하지 않고 계층마다 독특하게 특징지어지는 사고방식, 행동양식, 언어, 생활방식, 취향, 규칙, 도덕률... 등이다.

교육은 직접 중산층의 불문율을 가르치지는 않지만 그것에 기반한다. 그래서 빈곤층 학생들이 적응하기에 어려운 것이다. 확실히 다르다. 이 책에서는 꼬치꼬치 예를 들어 나열했다. 그래서 빈곤층 학생이 계층이동을 하고 싶다면, 학교에 잘 적응하고 교육적으로 성공하고 싶다면 바로 자신의 계층의 불문율을 내려놓고 학교의 불문율, 즉, 중산층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익혀서 그것으로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상담사, 학교사회복지사)는 그것을 잘 이해하고 구체적으로, 실질적으로 도와야 한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하나하나 예를 들어가며 그것들을 보여주고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변화시켜야할 지를 논의한다.

 

저자는 가난을 '상황에 따른 가난'과 '대물림된 가난'으로 구분하였다. 주소득원의 사망이나 질병, 이혼 등 환경의 변화로 인해 살아가는 중간에 발생한 가난, 중상층으로 살다가 가난해진, 일시적으로.. 그런 가난은 회복하기도 비교적 쉽고 학교에서 성공하는데 별로 장애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대물림된 가난'이다. 이것은 두 세대 이상 가난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런 가족은 위의 '불문율' 속에서 산다. 삶의 모든 영역에 지배하고 있고 그것이 수십년째 습관화되어 있고 모든 구성원들의 상호작용 속에 패턴화되어 있으며 지역사회 자체가 그 불문율로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고 유기체적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벗어나기가 힘들다.

요즘 우리나라에도 대물림된 가난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아이들이 처한 어려움은 고질적이다.

내가 대학생 장학금 지원 선발 심사를 하다보니 그런 차이를 확실히 알겠다. 중산층이나 중상층으로 살다가 IMF 경제위기 때의 실직이나 사고, 사망, 이혼 등으로 가난해진 아이, 적어도 5세까지 가정이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화목했던 가정에서 자란 청년과

할아버지 때 이미 가난해져서 부모 때에 학교부적응, 저학력, 이른 결혼과 출산, 불안정한 취업, 이혼, 실직, 질병이나 장애... 등을 경험하며 자라난 청년은 크게 차이가 난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쳇바퀴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빈곤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두 가지 요소는 교육과 인간관계이다.

사람들이 빈곤층에서 벗어나게 되는 네 가지 요인은 다음과 같다. 계속 머무르기에는 너무 고통스럽거나, 목표나 비전이 생기거나, 자신을 이끌어줄 사람을 만나거나, 특별한 재능 또는 기술을 얻거나. (15쪽)

 

공감이 간다. 공감백배다.

개입과정에서 가계도 그림이 제시되는데 '아하!'했다. 내가 빈곤층 아이들을 만나면서 과거의 전통적인 남-여의 부부와 그 밑의 자녀로 이루어진 가계도가 정말 싫어졌기 때문이다. 맨날 '결핍'을 드러내야 하는 가계도! 아빠 없어. 엄마 돌아가셨어. 누나 가출했어. 형 알바해서 나가살어.. 재혼과 삼혼... 결혼도 하지 않은 사실혼. 부모가 다 다른 아이들로 이루어진 가족... 혼인관계와 동거자가 서로 엉키고 뒤바뀌는 그런 가계도. 과거의 가계도 틀이 얼마나 혼인과 가족신화를 바탕으로 하는가 절감했다. 그래서 아예 가계도 안 그리고 그냥 문어발식의 생태도만 그리곤 했었다.

그런데 이 책에 보니 미국의 대물림된빈곤층의 가계도를 그릴 때 달리 그리고 있었다. 그렇구나... 나랑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았나보다!

 

 

 

중요한 건 다음부터이다.

저자는 가난을 '한 개인이 자원resources 없이 지내는 정도'라고 말하고 자원의 범주를 다음과 같이 나누고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20-22쪽)

  1. 재정적 자원
  2. 정서적 자원
  3. 지적 자원
  4. 영적 자원
  5. 신체적 자원
  6. 지원 시스템
  7. 관계, 역할모델
  8. 불문율 지식

우리가 실천현장에서 '사례관리'할 때 '강점'이나 '자원'이니 거론하지만 너무 웃기는 게 많았다. 그런데 이런 틀을 가지고 사례관리 사정을 한다면 정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또 저자는 빈곤층이 처하는 다양한 사례를 들고 자원을 늘릴 수 있는 대안과 원조, 지지자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흥미로웠던 것은 '안구운동으로 학습과 처리 따라가기'였다. (138-140)

그리고 책 말미 166-233쪽의 무려 68쪽에 담긴 '연구노트'이다. 논문을 쓸 때 인용할 문구들을 그대로 제시한 것인데 여기에 아주 핵심적인 내용들이 많다. 모두 메모해두고 암기하고 싶어진다. 주로 미국 자료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맨 끝의 부록, <첨가모델: 학교의 성과를 높이는 접근방법>이 가장 놀라웠다. 이 부분은 저자인 루비 페인의 글이 아니라 필립 E 데볼이란 사람이 쓴 글이다.

그는 '첨가모델'을 설명하면서 변화의 핵심은 개인에 집중하지 말고 환경, 사회를 바꾸는 노력, 사회가 함께 변화하려는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늘 개개인의 의지와 개인의 행동에만 힘을 쏟는데 사실, 빈곤층을 착취하는 사람을 제지하거나 대체하거나 제재하는 전략을 개발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우리가 공동체와 함께 하는 영역까지 아우르지 않는다면 우리의 모든 노력은 '가난을 확대'할 뿐이라고 경고한다. 그가 변화의 표적으로 제시한 '빈곤의 원인'들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243쪽)

 

  1. 개인의 행동 : 빈곤층 사람들의 선택, 행동, 특징, 습관을 연구.
  2. 공동체 내 인적자본과 사회적 자본 : 개인과 공동체와 사업체가 사용할 수 있는 자원 연구
  3. 착취 : 빈곤층 사람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착취되는 상황 연구
  4. 정치, 경제적 구조 : 국제적, 국가적, 지역적 차원에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정책 연구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동안 말만 번지르르하게 강점관점인 듯, empowerment 관점인 듯, 약간 좌파인 듯 행세했지만 속속들이 '결핍모델'에 젖어있었음을 절감했다. 부끄럽다.

중요하고 정말 유익한 것을 배웠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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