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

내 친구 똥퍼

샘연구소 2012. 11. 10. 01:22

그림책이다.

오래 전에 나온 책을 이제야 보게 되었다.

완전한 책 제목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내 친구 똥퍼(사계절출판사)'이다.

이은홍이란 이가 연암 박지원의 '예덕선생전'을 만화로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마을훈장님이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친구는 바로 똥퍼아저씨란다.

훈장님에게 배우러 오는 양반자제인 도련님은 더럽고 구차한 이와 더 친한 훈장님 밑에서는 공부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자 훈장님이 요리조리 말씀을 하시는데 나는 글이나 그림, 만화도 재미나지만 나도 모르게 쓰인 말에 판소리 흥까지 상상되어 더 재미나게 보았다.

 

훈장님 친구 똥퍼 아저씨로 말할 것 같으면,

 

"걸음걸이는 호랑이보다 힘차고 웃는 모습은 꽃잎처럼 부드럽고 맛있는 옷과 멋진 음식을 탐하지 않으니, 옛 성인들의 가르침에 딱 맞게 사시는 분”

똥이 더럽다 하시는 도련님에게는,

“똥은 어디서 나왔느냐, 똥 공장? 똥 나무?”

“네가 먹는 밥이 똥이 되고 똥은 거름이 되어 땅을 기름지게 하고 그 땅에서 나온 곡식과 채소를 먹고 네가 살아가니, 그분이 똥을 치우지 않는다면 네가 어찌 먹고살 수 있겠느냐!”

그래서 결론은 이거다.

 

“내 친구 똥퍼는 진짜 똥 퍼요. 닭똥 소똥 개똥 말똥 모두 다 퍼요.…내 친구 똥퍼는 진짜 살림꾼. 배추 미나리 수박 참외 모두 살리죠.…”

교훈적이지만 우선 재밌다.

 

 

지게에 지고 다니던 똥 담아 나르는 기구 똥장군

(사진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액을 읽고 보니 똥과 화장실에 얽힌 추억들이 생각난다.

 

내가 어릴 땐 똥퍼아저씨가 있었다.

'수세식'이 아닌 '푸세식'이 대세이던 시절이고. 서울에도 변두리엔 미나리꽝, 돼지우리, 밭이 있던 시절, 똥은 소중한 거름이었다.

술 취해서 거름에 쓰려고 모아둔 길가의 똥통에 빠진 아저씨들 얘기도 간간이 들었고

아이가 화장실에 갔다가 걸쳐놓은 판자 사이로 미끄러지는 바람에 똥통에 빠져서 온몸에 똥독이 올라 고생한 얘기도 들었다.

 

동네에서는 긴 장대 양쪽끝에 바가지를 달고 거기에 똥을 퍼담아서 철벅철벅 아슬아슬 메고 가는 '똥퍼 아저씨'를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친구를 골탕먹이고 놀릴 때 "00네 아버지는 똥!퍼요. 하루도 빠짐없이 똥!(강조를 넣어서)퍼요~"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대학때도 써클모임에서 불렀다. -_-;; (단골로 똥퍼집 아들로 불리우던 형은 지금 뭐하나? 경희대 한의대 다녔는데...)

 

어릴 적 산비탈에 자리잡은 외삼촌네서 유치원을 다녔는데 화장실이 집과 떨어져서 산과 밭이 보이는 곳에 자리한 '뒷간'이었다.

밤에 화장실 가려면 정말 무서웠다. 요강도 귀해서 방마다 있는 게 아니고 겨울엔 해도 빨리 지니...

겨우 한살 터울인 사촌오빠를 밖에서 지키라고 세워두면 오히려 '달걀귀신~'하면서 놀려서 오줌이 나왔다가 들어갔다 했다.

 

나는 1985년에 결혼하고 시댁에서 1년을 살았는데 거기 옛날에 쓰던 뒷간(푸세식 화장실)이 그대로 있었다.

냄새나고, 여름엔 구데기도 허옇게 기어다니고...  알뜰한 시아버님은 신문지나 찌라시종이를 정성껏 오려서 묶어 매달아놓으셨다.

결혼 초 힘들고 슬플 때 시어른들 눈을 피해 뚝 떨어진 그 뒷간에 들어가 모퉁이에 기대서서 울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초등학교 때도 이모나 외할머니한테 혼나고 엄마가 보고싶으면 역시 뚝 떨어진 화장실에 숨어서 울었다.

 

아들딸 많이 낳던 시절이니 집에 식구는 많은데 화장실이 한칸이라 어른부터 차례로 이용해야할 때도 있었다.

아니 집집마다 변소가 없고 공동화장실, 공중변소도 많이 썼다. 그래서 거기 얽힌 사건 사고도 많았다.

특히 청계천 평화시장 여공들이 사용하던 그 화장실은 악명이 높았다.

 

사실 똥과 화장실 생각을 하면 나는 기차나 비행기에서 화장실을 이용할 때 제일 궁금하고 죄송하다.

하늘과 땅에... 그래서 되도록 참았다가 내려서 볼 일을 본다. ㅋㅋ(별 걱정을 다 한다...)

 

어쨌든 우리는 늘 똥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일을 보았고 어떤 땐 똥과 오줌을 분리해서 모아야 했다. 다 재활용에 필요해서다.

똥도 소중했고, 똥퍼아저씨도 존중했다. 실제로 똥퍼아저씨의 아들이 성공해서 잘 되었다는 이야기도 알고 있다.

그러나 '수세식'화장실이 나오고 보건, 손씻기가 강조되면서 똥은 점점 우리 생활에서 멀어졌다.

 

오늘 이 그림책을 읽으며 새삼 똥과 화장실의 추억이 구수하다. ^^;;

수원과 고양 호수공원안에도 화장실 박물관 또는 화장실역사전시관이 있단다. 거기 똥장군, 똥지게도 전시되어 있는지.

 

 

덤으로 시 한 수

 

<똥지게>

우리 어머니 나를 가르치며
잘못 가르친 것 한 가지

일꾼에게 궂은 일 시켜놓고

봐라
공부 안 하면 어떻게 되나

저렇게 된다
똥지게 진다


심호택 (1947~ )

 

 

그렇지!

잘못 가르치신 거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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