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

M. 스캇펙

샘연구소 2014. 3. 4. 21:51

아직도 가야할 길

<그리고 저 저머에>

(손홍기 옮김, 열음사, 2007)

 

이번에 옮기며 다시 생각해볼 챕터의 주제는 '의식'이다.

스캇펙은 인간은 의식하는 존재라는 명제로부터 시작해서 그 의식은 결국 신과 통하는 것, 신에게 의탁하는 것이라고 끝맺는다.

호오....  정신분석이론을 활용해서 논지를 펼쳐가지만 다 동의하기는 어려웠다.

불교도였던 그가 인간에 대한 탐구 끝에 발견한 깨달음으로 인해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갖게 된 생각과 마음을 학문적이기보다는 고백적으로 써내려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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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잘 한다는 것은 더 의식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해결의 선행조건이다. 그렇다면 의식이란 무엇인가? 또 왜 그것이 중요한가?(77)

단 한 가지 관점에서 의식에 대한 적절한 정의를 내릴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보다 작은 규모의 것들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을 뿐이다. 단일한 관점에서 정의를 내리기 힘든 것들은 모두 궁극적으로는 신과 관련을 가지는 것이다. (78)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널리 알려진 표현이다. 나는 오히려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79)

의식을 가지고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 의지도 가지게 되는 것이다. (84)

여러가지 의미에서 의식을 가진 인간은 축복받은 존재이며 동시에 저주받은 존재이다. 인간은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악의 실체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84)

선택이 없다면 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자유 의지를 가진다면, 선악을 선택할 수 있는 힘도 가져야만 한다. 그러면 우리는 선을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도 가지는 것이다. (85)

불행하게도 고통이란 의식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부차적 결과이다... 우리는 자신의 죄와 불완전성을 의식하게 될 것이고 그리고 필연적으로 사회의 죄와 악을 더 잘 인식하게 될 것이다.(87)

 

죄를 짓는다는 것은 포괄적 의미에서 '목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목표를 맞추지 못하면 그때마다 죄를 짓는 것이란 의미이다. 죄라는 것은 끊임없이 완벽해지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누구나 항상 완벽할 수는 없기 때문에 모두가 죄인이다. (92)

죄의식은 - 때로 '진정제'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 여러가지 면에서 하나의 축복이라고 나는 늘 주장해왔다. ... 우리에게는 적당한 죄의식이 주어져 있어서 우리의 죄가 통제선 밖으로 벗어나지 않도록 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것은 우리가 죄를 지으려는 마음을 막아주는 가장 효과적인 안전장치이다. 우리가 더욱더 의식적으로 살아야 되는 이유들 중의 하나는 악한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이다. (95)

(여기서 프로이트의 무의식, 카를 융의 그림자 등 개념을 인용하면서 설명함)

우리의 의식수준을 높여야 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정신적 영적 성장의 근본이다. 이런 성장을 통해서 우리는 더욱더 유능한 존재가 된다. (97)

 

"심리치료는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려는 게 아니라, 당신의 힘을 길러주려는 것이지요. 이 과정을 다 끝낸다 하더라도 나는 당신이 더 행복해진다고 보장할 수는 없어요. 내가 보장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이 더 유능해질 거라는 점이지요." (99)

"그러나 세상에는 능력의 진공상태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더 유능한 존재가 되면, 신이나 우리의 삶은 우리에게 더 큰 일을 하도록 만듭니다. 결과적으로 당신은 여기 처음 올 때보다 훨씬 더 큰 문제로 고민하면서 이곳을 떠날 것입니다. 당신은 이제 더 이상 사소한 문제들에 얽매이지 않고 보다 더 큰 문제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기쁨과 마음의 평화가 찾아옵니다." (100)

 

우리의 의식과 끊임없는 가지 검증의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자유는 잃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 잘 적응해 온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은 그런 삶의 방식이 우리의 삶을 자유롭게 한다는 사실이다. 높은 수준의 의식 밑에는 고도의 자기통제력, 다시 말해서, 심리적 통제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105)

 

성숙한 종교는 죽음의 신비와 치열한 고투를 벌이며, 죽음과 직면함으로써 그 속에서 개인적인 의미를 발견하게 한다. 이 일을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하게 할 수는 없다.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당신은 부모를 통해서 신과의 관게를 맺을 수가 없다. 순환되는 출생, 죽음, 재생 등의 과정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으면서 '신의 자식'으로 스스로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116)

 

(죽음에 대하여...) "인생의 모든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인생의 모든 과정을 통해 죽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이 함축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적절한 때를 찾아 우리 삶의 통제권을 의식적으로 포기하는 법 - 궁극적으로는 우리 자신을 신에게 맡기는 것 -을 두렵지만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116)

 

신은 우리가 전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우리에게 말을 건다. 그러나 그 목소리를 듣고 따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마음을 열고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이다. ... 꿈을 통해서도 신은 우리에게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 그것은 무의식이 주는 선물이다. 그러나 우리는 꿈을 의식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고 그 속에서 신의 출현을 알아내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120)

 

나는 성인이지만 자동차의 운전석에 앉아 있는 그(신)의 존재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나 자신을 그에게 완전히 맡기며 살고 있다.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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