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

4천원인생

샘연구소 2014. 3. 12. 15:04

 

 

 

4천원인생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

저자   안수찬 전종휘, 임인택, 임지선 지음
출판  한겨레출판사 펴냄 | 2010.04.30 발간

 

2010년? 2009년? <한겨레21>이란 주간지에 '노동 OTL'이란 기사가 연재되었다.

기자들이 직접 맨 아랫층에 해당하는 노동현장에 들어가서 체험한 것을 적어 올리는 펄떡펄떡 숨쉬는 기사들이었다.

그걸 읽고 누구는 식당 아줌마에게 이것저것 잔심부름을 주문할 수 없게 되었다고도 했다.

 

그 기사들이 책으로 묶여 나왔었다.

오래 되었지만 다시 올리려 하다가 하종강 선생님의 추천사를 그래도 적어 옮기는 것으로 대신한다.

 

교육복지 현장의

교사, 사회복지사, 상담사들은 누구나 읽어보아야 한다.

우리가 만나는 아이들의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또는 삼촌, 누나, 언니, 오빠, 혹은 그 자신이거나 거의 그들의 미래일수도 있을 하층노동의 현장.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이다.

 

또는 읽는 대신

일정 기간동안 직접 뛰어봐도 좋겠다.

뭐, 현재 불안정한 비정규직 교육복지사라면 모르지만 정규직이라면.

 

그리고 이야기들을 읽으며

이렇게 비참하구나, 불쌍하다... 를 넘어서 이들도 사랑하고 기대하고 꿈꾸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왜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방임'하게 되는지, 그걸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기를. 

그들의 사랑과 꿈이 우리들의 사랑, 꿈과 결국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이런 기획연재를 기획한 <한겨레21> 전 편집장 박용현씨, 존경하는 하종강 선생님, 기자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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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하종강(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노동자들이 잇따라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자 한 방송사의 PD가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노동 문제에 특별히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 한 두 달 사이에 네 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보통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국 곳곳을 다니며, 스스로 목을 매거나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른 노동자들의 삶과 주변의 모습을 100여 개의 테이프에 담았지만 도대체 내용을 어떻게 전개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어느 일요일 우리 연구소에서 만나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눴다. 두어 시간에 걸친 이야기가 마무리될 즈음 그 PD가 나에게 마지막 질문을 했다.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분신하거나 목을 맨 그 노동자들 입장에서 한 마디 해주십시오."

그 물음에 나는 겸손하게 답했다.

"그 노동자들의 심정을 내가 어떻게 몇 분의 일이라도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129일이나 골리앗 크레인 꼭대기에서 외로움을 견디다가목을 매야했던 사람이나, 1년 반 동안이나 수배 생활을 하다가 자신의 몸에 스스로 불을 지른 사람의 심정을 내가 어떻게 몇 분의 일이라도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내 말을 들은 그 PD는 어이없다는 듯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푸념하듯 그러나 조금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내 말에 비웃듯 내뱉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내가 지금 어떻게든 그걸 한 번 해 보겠다고,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는 거 아닙니까……"

아, 나는 부끄러웠다. 우리가 '제도언론'이라고 비웃는 방송사 PD조차 노동자들의 절실한 상황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전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나는 도대체 그동안 뭘 하고 있었나? 30년 가까운 알량한 노동운동 경력이 그 PD 앞에서 단번에 무너져 내린 이유가 무엇일까?

직접 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그렇게 컸던 것이다. 1년 반 동안이나 수배 생활을 하다가 분신한 노동자 집에 찾아가 무심코 냉장고를 열었을 때, 두터운 곰팡이가 하얗게 덮여있는 반찬들을 직접 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산 것과 죽은 것만큼의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돌아다니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직접 보니까, 정말 말이 안 나오더군요."

쓸쓸하게 말하며 돌아가던 모습으로 내 머릿속에 각인돼 그 뒤 몇 년 동안 기억날 때마다 나를 부끄럽게 만든 그 PD가 바로 지금 이 시간(2010년 4월 14일) 권력의 방송장악에 맞서 옹골찬 파업을 벌이고 있는 MBC 노조의 이근행 위원장이다. ..(중략)

 

'직접 본 것'만으로도 그렇게 큰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데 '직접 겪은 것'을 통해 기자들이 얻은 깨달음은 그 크기가 얼마나 큰 것일지 미처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노동 OTL'기획 기사가 보석처럼 값지게 보이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흔히 유능한 기자를 보고 "발로 뛴다"고 표현한다. '노동 OTL'은 기자들이 발로 뛰는 것을 넘어 직접 "몸으로 때운"기록이다. "같이 땀 냄새를 맡고, 그들의 말을 듣고, 때론 협업하면서 오감을 이용해 취재한"(전종휘) 기록이다. 때로 기자의 마음과 몸에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했으나 우리 시대 비정규직, 빈곤 노동의 실상을 낱낱이 보여주는 귀한 기록이다.

"식당일을 마치고 신문사로 돌아오자마자 화장실 청소하고 쓰레기 치우는 용역 아주머니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넘겨온 부분에 대해 고민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임지선)는 고백은 십수 년 제도권 교육이 감히 가져다줄 수 없는 가르침이다.

 

<한겨레21> 기자로부터 처음 '노동 OTL' 기획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뒤통수를 한 대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과거 '위장취업자'들이 밀물처럼 노동현장으로 몰려 들어갔던 시대가 있었다. 수도권 부근 공단 지역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해가 바뀔 때마다 "ㅅ대 출신 40여 명이 ㅇ공단으로 들어갔다더라", "ㅇ대에서는 ㅎ을 선두로 20여명이 일렬종대 행진하듯 ㅈ공단으로 들어갔다더라"는 말들이 무성했다. 그리고 대부분 그 말이 사실이었다. 그 수많은 위장취업 활동가들이 이미 오래전에 썰물처럼 빠져나와 현장에 흔적조차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한겨레21>의 기자들은 다시 '위장취업'을 감행하겠다는 것이었다. '아, 이래서 역시 <한겨레>로구나' 싶었다.

기자의 전화를 받으면서도 머릿속에는 복잡한 생각들이 가득했다. '어, 이걸 어쩐다? 노동현장에 은밀하게 연결될 만한 활동가들이 누가 있을까? 도움을 줄 만한 현장의 적당한 활동가 한 사람조차 소개할 수 없다면, 이거 체면이 말이 아닌데'라는 제 앞가림 걱정부터 앞섰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참 못났지 싶다. 기자들은 어느 누구의 특별한 도움 없이도 능히 이 시대 가장 힘든 노동의 중심으로 뚜벅뚜벅 찾아들어갔거늘.

그렇게 현장으로 찾아들어간 기자들의 체험 속에는 우리 시대 여성 노동자, 감정노동, 영세 자영업자, 할인 유통업, 이주 노동자, 작업장 유해물질, 노동재해, 인간시장 등의 문제가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기사에 등장하는 철수와 영희 등은 기사의 재미를 위해 일부러 골라낸 사람들이 아니다. 여러 제약조건 때문에 만날 수 있는 사람이 한정돼 있었다. 그런데 그들 모두가 정확히 기사의 대상이었다. 무척 놀랐다."(안수찬) 노동자 주변에서 노동 문제를 붙들고 살아온 지 30년쯤 된다고 은근히 자부해온 나도 놀랐다. 이래서 사람은 늙어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문제점을 충실히 제대로 아는 것이 모든 문제를 푸는 시작이다. 구조를 분석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노동 문제를 고민하는 위정자들이 현장에서 딱 한 달만 일하면서 어느 노동자건 자유롭게 인터뷰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면, 구체적이고 훌륭한 정책 대안이 수없이 나올 거라고 절감했다."(임인택) 그리고 그 "문제의 해결은 노동의 '인간성'을 찾는 데서 시작되리라 믿는다."(임지선) 내가 한국사회 노동문제에 대해 감히 섣부르게 분석하거나 진단하는 내용으로 이 서문을 쓰지 않은 이유다.

"늘 주변에 있는데 우리 눈에서 자꾸 사라지는 사람들을 존재할 수 있도록 다시 불러내줘서 고마웠다."(최고라 독자편집위원) 내 마음이 바로 그렇다. 더불어, 수업 교재로 쓰기 위해 기사들을 모두 출력하는 수고를 다시는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책으로 묶어내내 더욱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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