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이 세상이 백 명이 놀러 온 캠핑장이라면
Why not Socialism?
저자: G.A. 코헨
번역: 조승래
출판사: 이숲(2013)
저자소개: 제럴드 앨런 코헨 Gerald Allan Cohen, 1941-2009
캐나다 몬트리올 출신으로 맥길 대학교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런던 정경대학과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쳤다.
공산주의 공장노동자였던 부모의 영향을 받은 그는 일찍이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으며, 옥스퍼드에서 수학하는 동안 영국의 주류 강단철학이었던 분석철학을 배웠고, 이후 그것을 마르크스주의에 접목하여 소위 '분석적 마르크스주의'의 대표적인 학자가 되었다.
그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악을 극복하는 실천적 사회윤리가 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기에 이 시대에 평등과 공동체 정신이 왜 필요한지를 부단히 설파하는 일이야말로 좌파 지식인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라고 주장했다.
이 책도 그 일환으로 나온 것이다.
대표적인 저서로 <카를 마르크스의 역사이론>(1978), <역사, 노동, 그리고 자유>(1988) 등이 있다.
아직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주의'라는 용어 자체에 알레르기적인 거부반응을 보인다.
저절로 그렇게 된다. 그렇게 듣고 배우고 자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사회주의가 무언지나 알고 그러는 걸까?
사회주의라는 이념과 그 적용이 있어온지 수백년이 되었고 그래서 이념에 대한 이론과 의견. 실천모양도 가지가지다.
그러니 '사회주의는 이런 것이다'라고 쉽게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또 안다.
어렴풋이 자본주의에 맞서는 어떤 것이라고.
그리고 또 안다. 우리가 선망하는 북유럽 나라들이 소위 '선진국'으로 본따기의 모델이 되는 이유는
그들이 일찌기 자본주의의 여러가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과정에서 사회주의를 과감하게 수용했다는 것.
그래서 지금은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자본주의-사회주의가 칼로 무 자르듯이 싹둑 구분하기 힘들다는 것.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불편하다.
사회주의, 공산당, 소련, 북한, 자유가 없고, 가난하고... 그런 것들이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불편한 감정을 일으킨다.
그런데 의외로 사회주의자들 중에는 참 평화롭고 온유하고 따스한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많다.
이 책도 읽는 동안 나는 그런 느낌을 가지고 읽었다.
중간중간 너무 타협하는 거 아니야? ... 라는 거부감도 왔지만 그와 나의 생각차이일 수도 있고
그도 고백했듯이 그도 잘 모르고 나도 잘 모르는 부분까지 규정하다간 교조주의가 될 수 있으니 봐줄 수도 있다.
또 '캠핑'이라는 게 생소해서 완전히 이해하기 힘들고 '캠핑'에 비유한 것이 적절한지 충분히 공감이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엔 '마실가는 것', '나들이', 아니, '두레' 같은 전통이 있는데... 겨우 캠핑? (오우... 그럼 우린 사회주의의 원조? 그렇다니까.. 사회주의가 별 거 아니라잖아... -_-;;)
또 이 책이 모두 172쪽인데 순수하게 코헨의 글은 17쪽-70쪽이니 모두 54쪽 뿐이고
나머지는 옮긴이의 해설과 자기 글이란 것도 좀 거슬렸다.
차라리 코헨의 글만 팜플렛처럼 나와서 3000천원에 많이 퍼뜨려졌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게는 해설이 더 복잡하고 난해했다.
그래서 다른 이들에게는 이 책을 빌려서 코헨의 글 부분만이라도 꼭 한 번 보라고 권하고 싶다.
또 교육복지, 교육, 사회복지가 사회주의적 가치를 실현하는 형태로 되려면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해야할까도 생각해보자고...
코헨의 주장은 간단하다.
사회주의는 쉽고 간단하고 편한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평등주의와 공동체의 원리이다.
--- 오우! 사회복지의 양대가치가 바로 존중(공동체)과 평등라고 배웠는데!
그런 바램과 지향은 원래 우리 안에 있고 실제로 그런 걸 하면서 살고도 있다.
그걸 확대하는 게 왜 안 되는 거야? 한 번 해보자구.
안 될 수도 있어. 하지만 뭐, 100% 완벽한 게 있나? 나도 불완전하고 죽고 세상도 변하는데. 그냥 해보자는 거야.
사회주의가 힘들다고? 왜 안 돼? 해보자구. 지금 무지 힘들게 체제 유지하고 있잖아? 이보다 힘들까?
단지 자본주의와 싸우자, 고쳐보자는 게 아니야.
공동체. 사랑. 평등, 평화. 그런 걸 해보자는 거야.
그런 거. 좋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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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에서는 두 가지 원리가 구현된다. 하나는 평등주의 원리요 다른 하나는 공동체 원리다. 공동체 원리는 평등주의 원리가 허용할 수도 있는 특정한 불평등을 금지함으로써 평등주의 원리의 작동에 제약을 가한다(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여기서 문제시되는 평등주의 원리는 기회의 근본적인 평등을 주장하는 원리다. 그런 원리는 결과의 불평등과 양립할 수 있다.) ......
......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는 단 하나의 평등주의 원리는 정의에 부합하는 진정한 평등의 원리로, 이것은 "사회주의적 기회 평등"이라고 부를만한 급진적인 원리다.
기회의 평등이 실현되려면, 온건하든 급진적이든간에 그 어떤 것 때문에 기회에 접근하지 못하여 누군가는 고통 받고 다른 누군가는 그렇지 않은 장애를 제거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종종 그런 장애는 특권을 독점한 사람들이 구가하는, 더 좋고 더 많은 기회 때문에 생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어떤 이들의 기회에 장애가 되는 것들을 제거하는 일이 이미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이들의 기회를 온전히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때로 그것은 기회의 불평등을 통해 혜택을 본 사람들의 기회를 감소시킨다. 이것은 기회의 평등을 증진하는 일이 평등화 정책일 뿐 아니라 재분배 정책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모든 형태의 기회 평등을 증진하는 일은 단순히 어떤 사람들이 누리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24-25)
우리에게 익숙한 사회주의 정책은 수입과 노동시간의 평등을 지향한다는 단순한 이유로 키부츠도 그런 식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사회주의적 기회 평등'이라는 표현에서 '사회주의'라는 용어는 잘못 사용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대답으로 나는 사회주의적 원리와 조직의 사회주의적 양식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 그러나 철저하게 생각해보면 그런 체제는 사회주의자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근본 원리에 모순되며, 평등이나 공동체의 어떤 원리도 그 자체가 그런 체제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 비록 정의는 유사한 환경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또는 행복하지 않은지에 민감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런 방식으로 평등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30-32)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 도박 등에 대한 비유와 비판... (33-38 ; 읽으면서 저자와 함께 깊이 생각해볼 만하다)
불평등이 광범위하게 확산하면 공동체는 부담을 느끼고 긴장 상태에 빠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공동체의 원리를 지키면서 사회주의적 기회 평등이 동요하는 사태를 진정시켜야 한다. 사회가 캠핑이 매력적인 것이 되게 하는 사회주의적 성격을 드러내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공동체'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공동체의 핵심은 사람들이 서로 관심을 보이고, 서로 돌보고, 또 유념하여 서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요청하는 데 있다. (이어서 선택의운과 책임.. 평등.. 공동체에 대한 내용...)
(38-39)
나는 사회주의적 기회 평등의 이름으로 금지할 수 없는 어떤 종류의 불평등을 공동체의 이름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불평등을 낳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 불의일까? 적절한 금지는 단지 '정의가 작동한다'는 조건에서만 규정될 수 있을까? 아니면 그것은 때로 정의와 모순되는 걸 까? 그런 모순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나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른다(물론 공동체와 정의가 잠재적으로는 양립할 수 없을 수도 있는 도덕적 이상이라고 결론짓는다면, 그것은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다). (40)
공동생활의 상호 호혜는 반시장적 원리다. 그것은 서로 반대급부를 염두에 두고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필요해서 배려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호 호혜와 다르다. 왜냐면 시장은 동료 인간에 대한 헌신과 상호 배려에 바탕을 두고 생산적 공헌의 동기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은 단지 현금 보상의 기초 위에서 작동할 뿐이다. 시장사회에서 생산적 행위의 직접적인 동기는(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전형적으로 탐욕과 공포의 어떤 혼합물이다. (41-42)
... 시장에서 남을 배려하는 것은 그 대가로 남도 자신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남에 대한 자신의 배려가 자신에 대한 남의 배려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남을 배려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 이것이 탐욕 동기이다 -, 혹은 피하고 싶은 것을 피하려고 - 이것은 공포 동기이다 - 남을 배려하는 것이다.(43)
모든 유형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서로 돕는다. 사회는 상호 부조의 네트워크다. 그러나 시장 사회에서 상호 의존은 근본적으로 상호 호혜적이지 않은 태도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45)
비시장적 협동자들은 협동 자체를 좋아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43)
시장-수단적 배려는 내가 얻기 때문에 주겠다는 것이지만, 비수단적 호혜는 네게 필요하거나 네가 원하니까 주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도 너에게 유사한 호의를 기대한다는 것을 뜻한다. (43)
자본주의의 엄청난 유산과 오늘날 사회적 조건을 구성하는 모든 우연적 요소가 우리를 짓누르고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에서 시작해서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논의하려는 문제는 우리가 실제로 사회주의를 제도화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사회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겠느냐, 그리고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주의 사회가 작동한다면, 안정성을 위해 요청되는 공동체적이고 평등주의적 성향이 강화될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일 것인지가 이 질문의 핵심 가운데 하나다. (53)
사실,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기적인 성향과 관대한 성향이 있다. 문제는 이기심을 비정상적으로 작동시켜 경제를 운영하는 법은 알지만, 관대함을 발전시키고 이용하여 운영하는 법은 모른다는데 있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조차 우리 사회에서 많은 것이 사회구성원들의 관대함에 의존해있다. 좀더 일반적이고 소극적으로 말하자면 그런 것들은 비시장적 동기부여에 의존하고 있다. 의사, 간호사, 교사 같은 사람들은 남을 돌보는 것을 직업으로 삼지 않은 자본가나 노동자와 달리, 그들이 하는 일의 직업적 목적 자체를 결과적으로 벌어들이는 돈의 많고 적음으로 가늠하지는 않는다. ........ 즉, 어떤 병이 치유되어야 하고 어떤 과목을 가르쳐야 하는지는 반드시 시장동기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그리고 시장동기가 그것을 결정하는 효율적인 방법도 아니다. (54-55)
이기적 선택이 횡행하는 경제체제에도, 비록 지금까지는 그 여지가 제한되어 있지만, 공동체와 평등의 요소를 강력히 투입할 방법은 있다.
그런 방법 중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것으로 복지국가 제도를 들 수 있다. 이것은 사회에 필요한 것들을 시장체제로부터 공급받는 방법이다.
좀 덜 친숙한 방법으로는 시장사회주의 제도를 들 수 있다.
이런 체제들은 우리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때 겪어야 하는 제약을 자발적으로 인정할 만큼 충분히 비이기적일 대에만 비로소 작동한다. (59)
사회주의는 공동체 정신과 정의가 사회구성원들의 경제생활 전반으로 확장되기를 열망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아직 그 방법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68-69)
이처럼 자본주의의 역동성은 가만히 내버려 둬도 스스로 유지되고 활성화된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에게는 그런 변화를 저지하는 조직된 정치권력이 필요하다. 반면에 그들의 반대편에 서 있는 자본주의자들은 체제의 결실을 차지하고 이미 권력을 쥐고 있다.
나는 사회주의가 "인간의 발전 단계에서 포식의 단계를 극복하고 진보하려는 인간의 시도"라고 말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모든 시장은, 사회주의 시장조차도 포식의 체계다. 그것을 극복하려고 했던 우리의 시도는 실패했다. 그러나 나는 결국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옳은 생각을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69 끝!)
제럴드 코언
사진 출처: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1150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