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과 이슈

가치와 도덕 1

샘연구소 2011. 4. 18. 13:12

 

 

 

최근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큰 인기를 끌었고 이후 정의, 도덕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마이클 샌델 교수가 주장하고자 하는 핵심은 결국 "인간은 도덕적"이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동안 민주주의의 실현에 있어서 절차와 방법적 민주주의가 마치 정의의 모든 것인양 치부되어 왔던 흐름에 대해 마음 속 한구석 이것만이 아닌데... 라고 생각해오던 차에 속시원하게 짚어준 책이었다.

 

오래전부터 많은 현자들은 사람들이 누구나 옳고 그름에 대해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며 스스로 그 기준에 적합한 존재가 되기 위하여 노력한다고 말했다. 특히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 반드시 이수해야하는 '인간행동과 사회환경'이란 과목에서 다루는 인본주의 심리학자들은 이런 측면을 강조하고 인간이 반드시 성적충동이나 이기심만으로 움직이지 않으며 무언가 더 나은 모습을 향해서 부단히 자신의 내면과 또 환경체계들과 교류하면서 살아간다고 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육이나 성장 프로그램들은 이러한 믿음 위에서 개발, 적용되고 있다.  

 

학교사회복지를 하면서 소위 '가치관 경매'라는 프로그램을 해왔다.

대개는 폭력이나 규칙위반 등 일탈행동을 하는 아이들에게 도덕심을 기르기 위해서, 또는 진로탐색 과정의 일환으로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과정으로 종종 이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아이들은 '경매'라는 게임 형식을 즐기면서 다양한 가치를 표현하는 단어들을 접하게 된다.

 

그런데 얼마 전 모 단체에서 시행한 프로그램 세부계획안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권력 돈  우정  사랑  가족 
 안전 봉사  도전  통찰력 건강
 자신감 꿈  리더십  지식 성공 
 정의  명예 성실  용기  열정 

 

학생들이 선택하게 될 가치 목록에는 정의, 명예, 성실, 용기 등과 함께 가족, 돈, 성공과 같은 단어들이 끼어있었다. 나는 가족, 돈, 성공이 과연 가치인가? 하는 의문을 가졌다. 그것들은 도구나 과정일 수는 있지만 진정한 가치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생각한 진정한 가치의 목록인 존중, 평화, 배려, 정직, 연대, 희망... 과 같은 것들은 많이 빠져있었다.

그런데 내 예상대로 많은 아이들은 의미도 애매한 '정의', '성실', '도전' 같은 단어보다 확실하고 친근한 돈이나 성공 같은 것들을 가치로 선택했다.

 

프로그램을 진행한 담당자는 그 결과를 가지고 아이들에게 과연 돈이나 성공, 가족이 최종적인 가치인가?를 한 번 더 생각해보도록 했을까? 가족이나 성공을 통해 더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묻는 것이다. 안전인지, 사랑인지, 안락함인지... 가족이나 성공은 도구나 절차일뿐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런 과정을 의도하지 않았다면 진정한 가치관 경매의 목록에 돈이나 성공은 빠지는 것이 옳을 것이다. 

 

혹여나 아이들이 돈, 성공, 가족 등을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로 선택했다면, 이후에 돈을 벌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도 좋고, 가족이 깨지면 자신의 가치가 다 무너진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진정한 '가치관'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이라면 오히려 돈을 벌든 못 벌든 삶의 원칙과 궁극적 목적이 될 수 있는 도덕적 기준이 될 진정한 가치들을 깨닫고 마음 속에 아로새기게 해주어야 할 것이다. 살다가 혹시나 가족 중 누군가가 사망하거나 부모님이 이혼하더라도 또 새로운 형태의 가족 속에서 살아가게 될 때라도 그 가족을 통해서 얻었던 또는 추구하고자 하는 믿음과 사랑, 희생, 배려 등을 간직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가치관 교육이 아닐까 싶다. 

 

얼마 전 신문기사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한국의 초등학생 중 많은 아이들이 '성공'을 최고의 목표로 삼았는데, 그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야 행복하다고 했다. 참으로 허망했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성공'만을 위해 '가족'중심적으로 공부를 해서 유명대학을 가고 외국유학을 가고 유명기업에 취직을 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을 배려할 줄도 모르고 조금만 좌절하면 부모에게 기대고 그럴 수도 없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고 책임있는 사회인사가 되어서도 정직과 존중이라는 기본적인 도덕심도 부족한 행동을 하기도 하는 것이 아닌가?

 

아내의 헌신적인 도움과 신앙심으로 시각장애를 딛고 훌륭한 삶을 살고 있는 강영우박사의  <우리가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71쪽) 에 이런 글이 나온다. 

 

"하버드대학에서는 낙제를 하면 1년 동안 정학을 시키는 제도가 있다. 낙제를 해서 정학을 받으면 그 기간 동안에는 대학 근처에 살아도 안 되고 집에 돌아가도 안 되며 제3의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살면서 근신해야 한다. 몇 년 전 아시아계 미국인 학생 10명이 낙제를 했는데 그 중 9명이 한국계 미국인이었다고 한다. 대학당국에서 상담을 목적으로 그 원인을 연구해보았더니 그들은 하버드 대학을 입학한 이후 인생의 장기적인 목적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목적이 있어야 상대적 경쟁에서 패배하여 상처를 입어도 다시 일어나 전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인생의 장기적인 목적'이란 단순히 성공, 돈, 가족만이 아닌 그 이상의 가치관을 말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저자의 모든 인생관과 책 내용을 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교육이든, 사회사업 집단 프로그램이든, 인생의 목적과 가치관, 도덕 이 세 단어들이 개인의 정체성 안에서 연결되도록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 먼저 교육자들과 사회사업가들이 '가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안에 과연 그런 '가치'에 대한 기준과 지향들이 있는지부터 돌아보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고민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