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

영화 <디태치먼트>

샘연구소 2020. 6. 4. 21:29

 

디태치먼트 (2011) Detachment

 

영화 포스터

 

드라마 2014.05.08. 개봉 97, 청소년관람불가

미국 (감독) 토니 케이 (주연) 애드리언 브로디

 

내가 좋아하는 배우인 애드리언 브로디. 그래서 본 영화였다. 오래 전 영화이지만 한 번 올려본다.

 

여기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소외되고 찢어진 상처입은 군상들이다. 교사도 학생도.

이 영화를 보며 내내 학교와 교직원(교사, 상담사...)의 역할, 인간관계를 어떻게 회복, 재정의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했다. 영화에서 전통적인 학교의 규범과 규칙들은 급변하는 사회에서 예측불가능한 학생들의 상태, 행동을 해석하지도 대처하지도 못하고 있다. 학교의 관성적인 제도를 지키기 위해, 교사를 보호하기 위해, 규정된 각종 시스템과 원칙, 서비스들은 참으로 공허하다.

 

등장인물들을 간단히 묘사하면 이렇다.

 

1. 주인공 헨리 : 어려서부터 엄마, 할아버지와 살았음. 엄마는 할아버지에게 성학대를 당한 것으로 보임(아이인 헨리를 방에 넣고 못 나오게 문을 잠금). 엄마 자살. 할아버지가 요양원에서 치매를 앓으며 죽어가는 과정을 손자인 헨리 혼자서 돌보고 있음. 우울하고 무기력한 모습의 기간제 영문학 교사. 거리에서 만난 에리카를 내키지 않지만 자기 집에 데리고 가서 돌봐준다. 약간 감정이 흔들리기도 하지만 철저하게 거리두기를 유지한다.

2. 에리카: 거리에서 섹스를 팔며 사는 가출 소녀. 처음엔 헨리에게 그런 목적으로 접근한다. 헨리에게 돌봄받고 살아난다. 헨리에게 감사와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하지만 헨리는 을 지키고 거리를 유지한다. 다시 거기에 상처받는다. 에이즈로 수용됨.

3. 교장: 남편과는 소통이 안 되는 여인. 체제에 순응하여 자리에만 연연하는 행정가.

4. 닥터 리우(상담사): 학생들 사안에 진절머리가 난 기계적인 모습.

5. 노교사 시볼트: 특유의 배짱과 유머로 맞서지만 자신은 약을 먹으며 버티고 있는

6. 동료 여교사: 학생과 부모에게 모욕당하고도 참고 사는. 헨리를 오해하는. 외로운 도시인

7. 요양원 실무자들: 노인들을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는 요양 기관

8. 폭력적인 남학생.

9. 메레디스: 자기 상처를 교사들에게 폭발시키거나 스스로 자해함으로 SOS를 보이다 결국 자살을 택하는. 헨리만은 자신에게 마음을 주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영화 제목인 디태치먼트detachment는 심리상담이나 정신분석에서 전문가들에게 요구되는 '거리두기', 내담자와의 '분리'를 표현하는 용어이다. 학교사회복지사로 아이들과 보호자들, 또는 교사를 만날 때도 클라이언트와 복지사 자신을 보호하고 개입의 전문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거리두기는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내가 만난 아이들 다수는 소위 애착attachment의 결핍이거나 불안전애착의 경험을 가진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자기에게 친절한 교사, 복지사, 상담사, 또는 오빠, 친구, 언니 등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곤 했다. 손을 잡고 놓지 않는 저학생 학생, 친구랑 딱붙어 다녀서 부담을 주는지도 모르는 아이, 계속 상대를 바꿔가며 오빠들에게 의존하고 정을 구걸하던 소녀, 친절하고 도움을 주려는 복지사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다가 기대에 차지 않으면 화를 내고,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며 복지사를 독점하지 못할 때 토라져서 떠나버리는 아이도 있다. 힘을 과시하면서 부하를 거느리듯이 관계를 힘으로 부여잡고 거기서 만족을 얻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가하면 어떤 아이들은 관심과 정을 충분히 주고 상처를 받아도 인내하고 기다리다보면 스스로 상처를 딛고 서서 멀어져가는 경우도 보았다.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순간이다.

 

전문적 개입에서의 거리두기인 디태치먼트,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여기서, 1961년에 수행된 연구를 하나 소개한다.

Isabel Menzies Lyth, ‘The Functioning of Social Systems as a Defence Against Anxiety: A Report on a Study of the Nursing Service of a General Hospital' (1961)

영국에서 베버리지 시대의 관료들은 사회복지 서비스에서 냉정한 중립성과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세기 중반 무렵에는 사회복지 외에도 그러한 행동양식이 전문직계에 뿌리깊이 안착되었다. 그런데 정신분석학자인 이사벨 멘지스 리스Isabel Menzies Lyth는 런던의 한 대학부속병원에서 수많은 간호사 수련생들이 과정을 수료하지 못하고 중간에 탈락하는 이유를 조사했다. 연구 결과, 간호사들은 일상적으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에서 일하지만 어려움을 완화하기 위해 강조한 디태치먼트가 사실 이들의 스트레스와 불안을 더 악화시키고 직업 만족도를 떨어뜨리고 있음을 발견했다. 전문적인 거리두기는 동료, 환자, 가족과의 인간적인 관계를 방해하고 불안을 조장할 뿐 아니라 디태치먼트와 함께 능력을충분히 발휘할 수 없게 파편화된 업무구조는 결국 소진을 조장하고 일을 포기하고 싶게 하고 있었다.

결국 이 연구에서 연구자가 강조한 것은 휴먼서비스에서 일을 잘 하고 시스템을 좋게 유지하는 데 있어서 인간관계가 얼마나 중요한가이다.

 

지금은 상황이 꽤 달라졌고 1961년에  Isabel Menzies Lyth가 되살아난다면 이전에 염려한 것과 달리 과도한 친절과 포장된 배려라는 감정노동으로 인해 소진된 휴먼서비스 워커들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실은 늘 단순하지 않다.

디태치먼트와 감정이입, 관계중심 실천 사이에서 우리는 늘 결단하고 책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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